[평양 톺아보기] 2. 김정은의 '성탄절 선물'과 '코 꿰인' 푸에블로호

김당 / 기사승인 : 2019-12-19 08:31:27
  • -
  • +
  • 인쇄
美 '지못미' 푸에블로호, 보통강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 코 꿰여 전시
북-미 '강대강' 대치 속 조롱거리 푸에블로호 참관 220만명 다녀가
미 하원, 김정은-트럼프 "사랑에 빠졌을 때" 송환촉구 결의안 상정
평양이 달라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전통적인 문법의 대남선전선동 인터넷 매체뿐만 아니라 해외에 북한 관광을 적극 홍보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매체'(multimedia)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시청각 및 동영상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달라진 평양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화제(話題)로 정보기관 전문기자인 김당 대기자가 입수한 국정원의 북한 관련 최신 자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김정은 시대 평양의 속살'을 톺아보는 기획을 1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반도 상공의 안보 기류가 심상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핵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북미 간에 강대강(强對强)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평양 보통강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이곳 야외전시장에 푸에블로호가 "코가 꿰인 채" 전시돼 있다. [구글 이미지]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공군사령관은 17일(현지시간) "북한의 성탄절 산물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외신에 따르면, 브라운 사령관은 이날 국방담당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겠냐는 질문에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준비 신호가 있는지 북한 지역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북한 외무성은 지난 3일 미국담당 부상(차관급) 명의 담화에서 "미국은 우리의 선제적인 조치들에 화답해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 무슨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대화' 타령을 늘어놓으면서 저들에게 필요한 시간벌이에 매달리고 있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6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재개 움직임과 관련 "북한이 무언가를 하려고 진행 중이라면 나는 실망할 것"이라며 "북한의 많은 장소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무언가 일어난다면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2017년엔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춰 ICBM인 '화성-14'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이미 올해 들어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쐈다. 대형 방사포까지 포함하면 13회에 27발을 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른 가운데, 한반도에 최강의 전략자산을 전개했던 2016년(24발)과 2017년(21발)보다 더 많이 쐈다.

미국의 '레드 라인'은 북한의 ICBM 발사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용 콘크리트 바닥을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위성발사장)에서 ICBM 로켓 엔진 성능시험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된 데 이어, 북한 당국은 두 차례(12월 7일과 13일)에 걸쳐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 공군 정찰기 RC-135U 컴벳 센트, 전략정찰기 E-BC 조인트스타즈, 고고도 정찰기 U-2S 레이디 드래곤, 주한미군 다기능정찰기 EO-5C 크레이지 호크  [미 공군, 위키피디어]

최근 미군 특수 정찰기들이 잇따라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까닭도 북한의 군사적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특수 정찰기인 리벳조인트(RC-135V)와 EP-3E 및 RC-135W, 전시에 뜨는 지상감시 정찰기인 조인트스타트(E-8C), 고고도 전략정찰기 U-2S,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이다. 한국 공군도 조만간 글로벌 호크를 들여온다.

정찰위성은 일정 고도에서만 볼 수 있어 사각이 발생한다. 북한군이 정찰위성이 지나는 시간대를 회피해 군사시설을 보강하거나 무기를 기동하는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다. 본격적인 군사작전 대비 차원으로 읽힌다.

주한미군의 정보자산은 오산 공군기지(실제는 경기도 평택시)에 집중되어 있다. 주한미군의 주요 정보전력은 미8군에 배속된 501군사정보여단, 미7공군과 함께 활동하는 607항공작전단, 공군 5정찰대대, 해군 NSGC 연락대 등이 있다.

5정찰대대 소속 U-2S 정찰기 3대는 하루에 1회씩 교대로 출격해 휴전선 인근의 20㎞ 고공에서 7∼8시간씩 비행하면서 북한 쪽 60∼70㎞ 지역까지 TV카메라로 촬영하듯 샅샅이 정찰한다. U-2S기를 한번 이륙시켜 작전에 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00만 달러(약 12억원)로 한국 공군은 U-2S기를 거저 얻어도 예산 문제로 운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한반도에 특수 정찰기가 뜨면 미국 전략자산의 조기경보 기능을 믿고 안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트럼프가 언제 청구서를 들이밀지 몰라 돈 걱정부터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다. 미군의 잦은 정찰 비행에 따르는 또 다른 걱정은 우발적 충돌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다.

미7공군 예하 607항공작전단은 한반도 상공에서 평시에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비한 항공작전계획을 작성해 돌발사태가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직 '휴전 상태'인 북미 간에는 정찰중인 첩보함이 나포되고 정찰기가 요격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미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 나포(拿捕) 사건(1968. 1. 23)과 미 해군 정찰기 EC-121기 격추 사건(1969. 4. 15)이 그것이다.

▲ 평양 보통강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돼 반미 선전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미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 [조선중앙통신]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의 대북 인식과 북한의 대미 인식이 모두 바뀌는 계기가 된 중대 사건이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해마다 1월이면 푸에블로호 사건을 특집으로 다루며 반미 선전선동을 강화한다. 푸에블로호는 현존하는 지구 최강국 미국을 상대한 북한만의 유일한 '대미 항전 전리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의 '푸에블로호의 말로' 기사는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조선인민군 해병들에게 나포된 때로부터 50년이 되었다. 현재 이 간첩선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는 평양의 보통강반에 코를 꿰인 채로 떠있다. 조미대결전에서 미국이 당한 패배를 보여주는 산증거물인 푸에블로호의 비참한 말로는 침략자의 운명은 달리 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 있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은 미 존슨 행정부 시절이던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원산 앞 바다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되어 82명의 미 해군 인원이 11개월 동안 붙잡혀 있다가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23일 승무원들만 풀려난 사건이다.

푸에블로호는 육군의 경화물선을 개조한 해군 정보수집함으로 무게 906톤, 길이 54m, 폭 10m, 속도 12.2노트이고, 승선인원은 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총 83명이었다. 나포 과정에서 북한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 당했다.

▲ 푸에블로호 나포 전투로 인한 선체 내부의 총탄 흔적. 나포 과정에서 북한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 당했다. [조선중앙통신]

푸에블로호 사건은 사건 발생 장소부터 논란 거리였다. 미국측은 공해상(북위 39도 25분, 동경 127도 54분)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은 영해(북위 39도 17.4분, 동경 127도 46.9분)라고 주장했다. 미국측 주장이 맞더라도 원산 해안을 기준으로 하면 12해리(약 22km)가 넘지만 원산 앞바다의 작은 섬 여도를 기준으로 하면 12해리 이내의 해역이었다.

승조원 송환 이후 열린 미 해군 조사위원회가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을 상대로 두 달에 걸쳐 조사를 벌여 30년만에 공개된 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푸에블로호가 북의 영해를 11번 침입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해제된 미 국방부 기밀문서에는 "가능한 북의 해역에 가깝게 접근하라. 북한의 반응을 알아보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돼 있다. 공공연한 정탐행위에 대한 북의 반응을 알아보는 것도 이 배의 임무 중 하나였던 셈이다.

북한은 나중에 해제된 미측 기밀문서를 인용해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불법침입한 목적도 미 중앙정보국(CIA)이 비밀리에 작성하고 미국 대통령이 승인한 '핑크루트 작전(pink root operation)'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소련에 대한 정탐행위를 목적으로 한 극비작전이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사건 발생 50주년에 '푸에블로호 사건의 역사적 진실'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푸에블로호는 미중앙정보국에서 직접 파견한 무장간첩선으로서 거기에는 전파를 잡아 가지고 남의 나라 군사기지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아주 정밀하고 현대적인 정탐설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원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에는 우리 나라 군사기지들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으며 함선위치일일기록부에는 1967년 12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일본의 사세보항을 떠나 공화국 영해에 여러 차례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 평양 보통강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돼 반미 선전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미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 [조선중앙통신]

푸에블로호 사건은 6·25전쟁 이후 발생한 첫 해상 나포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즉각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항해중인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3척의 구축함을 진로를 변경시켜 원산만 부근에서 대기토록 했다. 이어 25일에는 해·공군의 예비역 14,000여 명에게 긴급 동원령을 내리고,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기 372대에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28일에는 추가로 2척의 항공모함과 구축함 1척 및 6척의 잠수함을 동해로 이동시킴으로써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인질 82명이 잡혀 있는 상황이어서 섣불리 구조작전을 펼칠 수도 없었다. 베트남전이 열전(熱戰)으로 격화된 상황에서 섣부른 구조작전은 자칫 전면전으로 확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 발생 1주일 뒤인 1월 30일 새벽 베트남 전역에서는 월맹정규군과 비정규군(베트콩)에 의한 월남전 최대규모의 기습 공격인 '테트(Tet·음력설의 베트남어) 공세'가 개시되었다.

이 사건은 북한의 124군 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이틀 뒤에 발생했다. 꼭지가 돈 박정희는 당연히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것을 강력 반대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과 접촉해 함정과 승무원들을 석방하도록 북한측과 비밀협상을 하는 쪽을 택했다.

미국은 북측과 23차례 비밀접촉을 거쳐 세계 각국 기자단 앞에서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시인하고 사죄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굴욕 끝에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승조원 83명(전사자 시신 1구 포함)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북미 갈등 관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불과 4개월 후인 이듬해 4월 15일 미 해군 정찰기 EC-121가 동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에 의해 격추되는 급박한 사태가 벌어졌다. 승무원 31명을 태우고 일본에서 출발한 미 해군 EC-121 정찰기가 동해 NLL 부근에서 격추되어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호를 다시 급파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또 한번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번에도 영공 밖에서 공격받았다는 미측 주장과 자국 영공을 침범해 격추시켰다는 북측 주장이 상반되었다. 기내에는 장교 8명과 엔지니어 23명이 탑승해 있었고, 그중 9명은 러시아어와 한국어 암호통신을 해독하는 언어학자였다. 주어진 임무는 "Musu Point"라는 함경도 길주군 근해에서 소련과 북한 사이의 전파정보 수집 활동이었다. 이 임무는 명목상으로 미 태평양사 제7함대의 지휘 하에 했으나 실제로는 국가안보국(NSA)이 시행한 첩보 활동이었다.

▲ 푸에블로호 내부에 전시된 나포 전투 작전 상황도를 지켜보는 참관자들 [조선중앙통신]

지난 2010년 6월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립안보문서보관소가 공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닉슨 행정부는 1969년 EC-121 격추 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뒤에 마련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에서 '프리덤 드롭(Freedom Drop)'이라는 작전명의 `전술 핵무기 사용' 비상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0.2~10 킬로톤의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로 북한내 12개 이상의 표적을 공격한다는 내용이었다.

닉슨 행정부는 사건 직후에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다양한 군사보복 옵션을 검토했지만, 북한의 반격에 따른 긴장고조 또는 전면전 발발 가능성, 군사행동이 베트남전에 미칠 영향,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감안해 군사보복을 포기했다.

지난 2016년 4월 미군이 한반도에서 정찰활동을 강화했을 때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우리의 영공과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하려는 침략자들에 대하여 단 한번도 자비를 베푼 적이 없다"며 푸에블로호 사건과 EC-121 격추 사건을 다시 상기시켰다.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하였던 미제의 전자정찰기 'EC-121'이 맥도 춰보지 못하고 날개죽지가 부러져 떨어졌으며 미제의 전략정찰기 'RC-135'가 우리의 영용한 매들에 의해 단호히 격퇴되였다. 우리나라 영해에 기어들었던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와 괴뢰군의 '경호함 56호'가 나포되거나 그대로 바다물 속에 수장되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신재 연구원은 2015년에 펴낸 〈푸에블로호 사건과 북한〉에서 "북한의 대미 인식은 '철천지 원쑤'라는 단면적이고 획일화된 소극적 대미 승리 인식에 불과했지만 푸에블로호 사건을 계기로 대미 대결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물론, 미국과 대결하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도 발견하게 됐다"면서 푸에블로호 사건이 북한의 대미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보여준 저자세에 자신감을 얻은 김일성 정권은 불과 열달 뒤에 남한내 해방구 건설을 목표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미 정찰기 EC-121를 격추시켰다.

▲ 푸에블로호 전시공간의 안내는 나포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박인호(80) 해군 대좌가 20년째 도맡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또한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최강국 미국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고취시키는 학습장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포 사건 발생 31년이 지난 1999년 원산항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의 제네럴 셔먼호 격침기념비 앞에 옮겨 반미 선전교육장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당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시찰하고 "조국해방전쟁과 관련한 사적물과 전시물들을 더 발굴하기 위한 사업을 심도있게 벌려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보통강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푸에블로호 전시 공간을 보통강변에 만들어 전시해 왔다.

▲ 평양 보통강변에 "코가 꿰인" 생선처럼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 위성 사진 [구글 어스]

1953년 8월 17일 개관한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북한이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정의하는 한국전쟁에서 '미제국주의에 승리'(정전협정에 의해 한반도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 김일성의 업적을 기념하는 군사·전쟁 박물관이다. 그후 1974년 4월 11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가, 지난 2012~2013년 리모델링해 재개관하면서 푸에블로호를 전쟁승리기념관 야외 전시장으로 옮긴 것이다. 지난해 1월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미 청년·학생·군인 등 219만 명의 참관자가 이곳을 다녀갔다.

이 전시공간의 안내는 20년째 박인호(80) 해군 대좌가 맡고 있다. "당시 정치부함장이였던 박인호 동무와 6명의 수색조성원들은 적함의 선미갑판 위로 비호같이 뛰어올라 단 14분만에 놈들의 간첩선을 완전히 제압하고 80여명의 적들을 몽땅 사로잡는 혁혁한 위훈을 창조하였다"(노동신문, 2018. 8. 28)고 보도한 그 박인호다. 당시 상위 계급이던 박인호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나포작전에서 세운 전공 덕에 장령이 아님에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고 특례로 종신 복무를 보장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고 한다.

▲ 푸에블로호의 함장이 영해 침범을 시인하고 사죄한 문건에 미국 협상 대표가 서명하는 모습을 담은 선전탑 앞에서 즐거워하는 북한 군인들.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최강국 미국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고취시키는 학습장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조선의 오늘]

북한 당국은 해마다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 "푸에블로호는 현재 외국에 억류되여 있는 유일한 미군 선박"이라고 조롱한다. 반면에 미군에게 푸에블로호는 이른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상징적 존재이다.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서도 아직 '현역함'으로 대우받는다. 언젠가는 되돌려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해 5월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사랑에 빠졌"을 때만 해도 미 하원은 푸에블로호의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H.Res.894)을 상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식은 현재로선 '로켓맨' 김정은이 '늙다리' 트럼프에게 배송할 성탄절 선물이 푸에블로호일 확률은 1도 아니고 장거리 미사일일 확률이 99(%)인 엄중한 상황이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핫이슈

만평

2020.9.18 0시 기준
22783
377
19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