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 칼럼] 태영호,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찍어달라?

이원영 / 기사승인 : 2020-04-08 21: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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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 범죄' 소명·역량 검증 없이
보수 성향 지역구에 묻지마 공천
선택 앞둔 유권자에 무례 아닌가
붉은 점퍼를 입고, 푯말을 들고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서 오가는 행인을 향해 인사를 하며 한국식 선거운동을 하는 태영호(개명 후 태구민) 후보.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회주의 북한의 고위공직자를 지낸 사람이 자본주의 정치 시장에 뛰어들어 한판 대결을 벌이다니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겠지만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기본적인 궁금증부터 짚어보자.

많이 알려졌듯 북한이 주장하고, 외신이 전한 바에 따르면 태영호는 '파렴치 범죄'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태영호가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재직하다 망명한 직후인 2016년 8월 21일 자 영국 선데이 익스프레스는 태영호의 망명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 망명 두 달 전인 6월 북한은 '국가비밀누설, 자금횡령,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태영호를 소환한다.

태영호가 소환에 불응하자 북한 검찰은 7월 수사에 착수한다. 영국 외무부는 미국 중앙정보부(CIA)에 태영호의 망명 의사를 알렸고, 워싱턴 관계자가 즉각 영국으로 날아오면서 한국행이 결정된다. 이 보도에서 드러난 태영호의 혐의는 북한 방송 및 저술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북한을 배신하고 망명한 고위 공무원인 태영호에 대해 북한이 '날조'한 혐의를 뒤집어씌우면서 정치적인 효과를 거두려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처럼 제기된 태영호의 혐의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설명이 아직 없다는 점이다.

태영호의 혐의에 대해 우리 정보당국이 사실인지 날조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리고 통일부든 어디든 공식 해명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적이 없다. 우리 정보당국은 미국과의 관계, 대북문제 등을 고려할 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 이해는 간다.

그러나 태영호를 국민의 대표로 쓰겠다며 지난 2월 영입한 미래통합당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김형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온 사람이다. 1000만 이산가족의 설움, 1100만 북한 동포 입장에서 대한민국 평화의 길을 제시하고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입장을 알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를 내놓는 데 그쳤다.

그리곤 통합당은 그를 '보수의 심장'이라는 강남갑에 전략공천했다. 한마디로 '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우리 당 후보니까 무조건 찍어달라'는 메시지와 다를 게 없다. 유권자로서는 황당하고 혹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소명된 것이 없고,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할 어떠한 역량 검증을 거친 적도 없는데, 다만 '북한 고위 공무원 출신 탈북자'라는 이력 하나만으로 표를 달라고 태영호를 후보로 내세운 통합당은 유권자들에게 합당한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지. 나아가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는 아닌지.

그를 영입한 이유에서 '대한민국 평화의 길을 제시한다'라고 했는데 북한이 최고의 험악한 단어를 동원해 비난하고 있는 인물이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여할 역할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그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남북화해와 평화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남북 갈등과 긴장 조성의 선봉에 나서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강남갑 지역구 주민들은 태영호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을지 무척 궁금하다. 그 지역구 주민이 아니라서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만약에 태 후보가 나에게 표를 달라며 주먹 인사를 건넨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요,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 이원영 사회에디터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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