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소설로 그린 '민족의 사적인 역사'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5-21 1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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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페루 독재정권과 부정부패, 도덕적 타락상 다룬 초기작 국내 초역
노벨문학상 선정위 "권력 구조의 지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

"*(은)는 독재자일 뿐 아니라 살인자야. 그는 불법으로 정당을 해산시키고, 언론의 자유도 말살했어. 그것도 모자라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기까지 했지. 한 번 피맛을 보더니 뵈는 게 없는지 자기에게 조금만 반대해도 닥치는 대로 감옥에 처넣거나 추방하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자행했단 말이야."

 

*표시 자리의 이름만 지우고 얼핏 읽으면 한국 군부독재의 만행을 말하는 대목처럼 읽히는 구절이다. 마침 엊그제가 광주민주화 항쟁 40주년이었으니 더욱 그럴 만하지만, 기실 광주 학살 반세기 전 남미 페루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최근 국내에 초역된 노벨문학상 수상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84)의 장편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엄지영 옮김·전2권·창비)에서 가져온 것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루 출신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는 '소설은 민족의 사적인 역사'라는 발자크의 언명처럼 시시콜콜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구조와 이면을 드러낸다. [창비 제공] 

 

페루의 오드리아 장군은 1948년 부스타만테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8년에 걸쳐 숨막히는 독재를 이어갔다. 정당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의 활동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며 감옥은 정치범으로 넘쳐났고 해외로 망명한 이들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른바 '오체니오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요사는 이 시기 페루에 팽배하던 냉소와 무관심, 체념과 도덕적 타락의 분위기를 장편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 담아냈다. 요사의 작품들은 대부분 국내에 소개돼 있지만 이 장편은 최근에서야 국내에 초역됐다. 요사가 "만약 불구덩이 속에서 내 작품 중 하나만 구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이 작품을 택할 것"이라고 언명했던 소설이다.

 

보안총국장 베르무데스는 페루 남부 아레키파에서 용역과 경찰을 동원해 집회를 막으려다 주민들에게 발포를 하고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그는 성난 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민심 무마용으로 결국 해임되고 오드리아 독재 정권도 몰락하기 시작한다. 독재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한편으로는 거액의 뒷돈을 긁어모아 후일을 대비했던 카요 베르무데스, 그의 도움을 받는 기회주의적인 사업가 페르민. 그의 아들 산티아고 사발리타와 페르민의 운전기사였던 암브로시오. 베르무데스의 정부(情婦) 오르덴시아와 암브로시오의 아내이자 페르민 집안 하녀였던 아멜리아. 이들의 이야기가 현란하게 뒤섞이면서 소설은 흘러간다.

 

산티아고는 신문사 기자로 살아간다. 대학시절에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운동권'에도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냉소적이고 보헤미안적인 태도로 나날을 무의미하게 소모할 뿐이다. 그가 우연히 유기견 보호소에서 옛날 아버지의 운전기사 암브로시오를 만나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주점 '카테드랄'에서 나누는 대화가 이 소설의 큰 축이다. 이 과정에 요사 특유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동원돼 화자의 목소리들이 맥락 없이 수시로 끼어들거나 뒤섞인다. 독자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자주 독서의 흐름이 끊기고 암호를 해독하듯 앞뒤로 오가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다수의 인물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목소리들의 협주곡'을 통해 작품을 '다성적이고 다면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노리는 셈이다.

 

"그들을 만난 첫날, 넌 네 엄마 아빠와 포페예를, 그리고 미라플로레스를 네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기 시작했지. 그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사발리타, 그때 넌 모든 관계를 끊고 다른 세계로 뛰어들고 있었던 거야. 네가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지? 그는 생각한다. 그런데 넌 대체 무엇하고 인연을 끊겠다는 거였지? 그리고 어떤 세계로 가려고 했던 거야?"

 

'프티부르주아'로 모자람 없이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산티아고는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 1980년대 한국 대학의 상황과 산티아고가 만나는 환경은 너무나 흡사해서 마치 한국의 그 시절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캠퍼스에는 사복경찰이 진주해서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프락치들도 끼어들어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산티아고가 회고하는 대학 신입생 시절.

 

"우린 대학 생활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지. 나란히 당에 가입하고, 함께 인쇄소에 가거나 노동조합에 숨어들 생각이었어. 그뿐 아니라 함께 감옥에도 들어가고, 추방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 우리가 상상하던 대학생활은 어떤 타협도 없는 전쟁이었어. 철부지 같으니. 나는 철없는 아이에 불과했던 반면, 그녀는 크롬웰이나 마찬가지였어. 당시만 해도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엄청나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

2학년 때까지는 나름대로 헌책방 구석방이나 귀가 어두운 아주머니의 하숙집 등지를 돌며 '학습'을 하고 동지들과 뜨거운 토론을 벌였던 산티아고. 그는 절친 삼총사 중 입으로는 번드르하게 과격한 주장을 하던 녀석이 산티아고도 좋아했던 여자 동기를 꿰차고 비겁하게 물러서는 상황을 체험한다. 이후 보안 당국에 붙잡혀 갔다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신만 석방되자 동기들을 볼 낯이 없어 그 길로 학교에 나가지 않고 삼촌의 도움으로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산티아고의 아버지 페르민이 보안총국장을 만나 나누는 대화는 반세기를 지나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과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아연할 따름이다.

"공산주의가 우리나라에서 불법화된 것은 알고 있나? 자네한테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게."(보안총국장) "카요 씨, 국가보안법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런 코흘리개들을 위해 만든 법이 아니잖습니까."(페르민)

 

페르민은 아들이 집을 나가 홀로 살면서 기자로 밑바닥 생활을 감수하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아들은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해 사업을 하면서 기회주의적인 행각을 보이는 게 끔찍이 싫다. 그는 집안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고 싶지 않고, 연락마저 끊다시피 한다. 소설은 데카당하고 보헤미안적 반항기질을 품고 살아가는 산티아고가 암브로시오와 함께 아버지의 비밀에 접근해가면서 당시의 인권유린과 부정부패의 실상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비극적인 캐릭터들이다. 하녀 아말리아는 얼치기이지만 사랑만은 진짜였던 남자 트리니다드를 만나 짧은 행복을 누리지만, 그는 고문을 받은 끝에 급사하고 뱃속 아이는 사산하고 만다. 다시 암브로시오의 집요한 추근거림에 넘어가 그의 아내로 겨우 자리를 잡는가 싶었지만 둘째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만다. 베스무데스의 정부 오르덴시아는 화려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면서 자신이 페루의 '세컨드 레이디'라는 착각을 하지만, 그녀는 보안총국장이 대사나 장관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접대할 때 필요한 존재였다. 베스무데스가 외국으로 무정하게 홀로 돈도 남기지 않고 도피한 뒤 마약과 동성애에 빠져 방황하다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외국으로 도망갔다가 몰래 다시 돌아온 베스무데스는 사나운 덴마크 개들을 거느리며 호의호식한다. 그를 두고 하는 말도 어쩌면 지금 이곳의 한탄 섞인 푸념들과 흡사한지, 실소할 따름이다.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그런 나쁜 놈이 두 발 쭉 뻗고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둘 수 없지." "우리가 아무리 기를 써도 그런 놈은 편하게 살게 돼 있어. 그러려고 돈을 움켜쥐고 있는 거 아니겠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출세작 '도시와 개들'의 무대인 리마의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리마의 영웅 레온시도 프라도 장군이 벽화로 새겨진 캠퍼스와 군복을 입고 수업을 받고, 철조망 쳐진 높은 담장 바깥에서 보초를 서는 학생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소설에서 결정적으로 군사독재정권에 타격을 입힌 지역인 아레키파에서 태어난 요사는 1950년 리마의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에 진학했으나 2년 만에 중퇴하고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이 때의 군사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도시와 개들'을 발표, 스페인 최고 문학상 중 하나인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문학상과 스페인 비평상을 받으면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붐'을 주도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요사는 자신이 다녔던 군사학교를 배경으로 집필한 이 작품에서 학생들 간의 알력과 학교의 대응 과정을 통해 페루의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풍자와 신랄한 비판의 톤은 1969년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 이르러 정점을 찍은 뒤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 회의를 느끼고 우파로 전향하기 시작해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좌파적이고 사회 고발적인 성향을 거두어 들이는 대신, 1970년대 후반부터 신자유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1990년에는 급기야 우파연합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지만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한 뒤 스페인 국적을 취득해 런던과 스페인을 오가며 집필 생활에 전념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를 다룬 '염소의 축제'(2000년)를 발표하며 초기의 사회 비판적인 세계로 다시 돌아온 요사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한림원은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상징하는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는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반세기 전에 이미 형성된 제3세계 일반의 군사독재와 부패의 구조를 씁쓸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부당한 권력과 부패와 비겁한 배신과 마음속 구멍을 메우려는 욕망들이 명실상부한 이야기꾼 요사의 손끝에서 시시콜콜 마법처럼 이어진다. 그가 제사(題詞)로 인용한 발자크의 '소설은 곧 민족의 사적인 역사'라는 언설은 이 소설에 아주 잘 어울린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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