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난장이 가족은 이만큼 넓게, 멀리 왔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6-19 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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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생활인으로서 부닥친 노동의 현실
'아버지의 시궁창 같은 삶'이 보석
상처 극복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

'엄마와 아버지는 매일 밤 죽자고 싸워댔다. 정말이지 같이 죽자는 형국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두 번이나 음독을 했고, 불행에서 도망치기 위해 짧은 연애와 실연을 거듭했다. 그 정점은 엄마의 자살이었다. 맙소사.'

 

작가를 만나서 작품 속 이야기가 얼마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냐고 묻는 것 만큼 상투적이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비율의 문제일 뿐 대개는 어느 정도 반영되게 마련이지만, 작품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유기체로 대해야 한다. 소설을 다큐로 읽는 일은 대단히 어리석은 독법이지만, 소설가 이수경을 만났을 때는 조심스럽게 먼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선선히 답했다. 디테일한 부분을 빼고는 모두 사실이라고.

▲첫 작품집을 펴낸 소설가 이수경. 노동운동의 시각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의 가족 이야기를 녹여낸 연작소설집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수경의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강)에는 가족사의 비극이 선연하다. 일찍이 스무살 때 서로 좋아 연애하다 자신을 먼저 낳고 결혼을 한 부모였지만, 그녀가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화단에 핀 작은 꽃보다 더 여리고 소심해보이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시종 폭력을 휘둘렀다. 그 '지옥'은 결국 엄마의 자살로 이어졌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등지던 날 엄마에게 간다던 딸은 학생운동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들어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삼 년 후 그녀는 운동의 동지로 만났던 남자와 결혼했다.

 

그 남자는 '적성'이 맞아서 공장 노동자로 살아갔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며 7~8년 살았는데, 일하다보니 그는 어느 사이 노조위원장이 돼 있었다. 그는 어느 크리스마스 날 가까운 신도시의 자연사박물관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간다. 다음날이면 그는 굴뚝 위로 올라가야 한다. 자연사박물관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생쥐를 발견하고 귀여워하지만, 정작 그 쥐는 뱀의 먹이로 던져진 존재였다. 그들 또한 생쥐 신세와 다르다고 단정할 수 없는 불안이 표제작 '자연사박물관'에는 흐른다.

 

아내는 어느날 먹지도 못하는 닭똥집을 사다 달라고 남편을 조른다. 남편이 거절하자 분노하고 슬퍼한다. 남편은 뒤늦게 성찰한다. '아내는 왜 그렇게 사소한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자고 닭똥집 같은 것에 분노하고 슬퍼하게 되었을까. …그녀에게 닭똥집을 사다 줄 수 있었던 그 겨울밤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아내는 이제 섹스도 하지 않고 담배도 안 피우고 더 이상 추운 밤에 닭똥집 따위를 먹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아내도 이제 생활에 지쳐 예전처럼 가슴이 더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해나 사랑 따위는, 추운 겨울밤, 먹지도 못할 닭똥집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철탑이나 고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상에서의 선택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표제작을 포함한 7편의 단편들은 모두 이들 가족과 연관된 이야기로, 연작 소설처럼 읽힌다. '크라운 공장 노동자 가족'에서 중소기업 대통령표창을 받았던 회사는 공장을 해외에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공장을 쪼개 라인별로 도급을 주었다. 남편이 크리스마스 다음날 아침 크라운 공장 굴뚝으로 올라가 이듬해 여름에 내려올 때까지, 그녀는 그가 그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다시 남편이 노조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또 노조를 만든다고? 그와 뜻이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엔, 그때처럼 감당해내기엔 그나 그녀 자신이나 늙고 지쳤다고 느꼈다. 노동조합을 지킬 수나 있을까 생각했다. 노동조합으로 지켜질 것이 있을까도 생각했다. 국가도 법도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회사는 언제나 그들의 삶의 반대편에 서 있다. 결국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다가 누군가는 비틀거리고, 전향하고, 남은 몇몇은 거리나 굴뚝 위로 몸을 던질 것이다. 그런 그들을 연민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그 이상 무언가 더 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노동운동을 향한 망설임 없는 직진과 그 과정의 투쟁사를 전개하는 소설이 아니다. 운동으로서의 노동 행위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노동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부닥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서 그 과정의 솔직한 갈등을 전개하는 양상이다. 그녀는 명문고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아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피폐해지자 "주변과 중심, 도피와 비판을 구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도피는 아니냐고 물었고 주변부에 머무는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고도 다그치지만, 기실 이 말은 자신을 향한 불안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집 앞에서 주워온 소파에 좌절한 남편이 앉아 있을 때, 낡은 소파의 색이 고흐의 자화상 속 빛깔과 비슷하게 보여 고흐가 잠시 휴식을 취한 늙은 노동자로 다가왔다. '고흐의 빛'에 나오는 이 남편은 불법해고에 맞서 싸우다가 공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바람에 일억오천만원 짜리 '업무방해 및 기물파손 손해배상 청구서'를 회사로부터 받는다. 폐자재 분쇄기에 외국인 노동자 아불의 한쪽 손이 '분쇄'되어 버렸고, 회사는 아불을 해고했다. 스물한 살의 아불이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채 공장 분쇄기에 목을 매자, 다시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성실하게 노동하며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아보려던 남편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됐다. 그녀가 괜찮겠느냐고 묻자, 남편은 오래도록 흐느꼈다.

 

'아불이 죽은 폐자재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해고된 남편은 농성 천막을 걷고 회사와 합의했다. 회사는 공장 문을 부순 것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남편과 해고자들은 노동조합을 접고 공장을 떠나는 것으로. 그때 남편은 대답 대신 오래도록 흐느꼈고, 그 후 3년 동안 스스로 공장의 노예가 되었다.'

 

이 노동자 남편과 사는 아내의 개인사는 '인생이야기'와 '노블카운티'에 구체적으로 전개되거니와, 아버지의 폭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결핍인지 아프게 드러나는 서사다. 그녀에게 소설 쓰기를 가르쳤던 스승은 "네 아비의 시궁창 같은 삶이 네게는 보석과도 같을 거"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아픈 가족사를 개인사의 틀에 가두지 않고 높이 올라가 조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느냐의 문제라고 스승은 말했던 셈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는 장면을 이렇게 썼다. '나는 침착하게 내복을 입혀 상처 입고 부서진 엉덩이를 덮어주었어요. 그때 나비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창백하고 연약한 노란 나비가 내 앞으로 날아오른 거예요. 11월에 무슨 나비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나는 분명 나비를 봤어요. 아버지 말이에요. 아버지는 나비로 환생했고, 나는 아버지의 전생의 딸이 된 거죠. 나의 지옥, 우리는 그렇게 끝이 났어요.'

▲엄마의 비극적인 죽음을 최근에서야 단편을 쓰면서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이수경. 그녀는 "쓰면서 생각하고 분석하니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대부분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졸업은 하지 않았으니 고졸인 셈이지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여러 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하기도 하다가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과외를 비롯한 다양한 부업으로 노동자 남편과 살아낸 이수경 씨. 그녀는 마흔 무렵에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이씨는 작가로 출발하면서 글쓰기의 방향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찾았다고 했다. 자신의 현실에서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길어올릴 수 있는 롤모델로 섬겼다. 그녀는 "편향적인 운동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노동자 이야기를 여러 시각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음 단계로 1960년대생의 다양한 삶을 담은 장편을 구상하는 중이다. 1960년대 생을 획일적인 '386'으로 통틀어서 말하는, 그 단정과 치우침을 극복하고 싶다고 했다.   

 

이수경의 이번 소설들은 글쓰기가 치유의 단계로 나아간 전형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족사를 쓰면서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 보고 분석하면서 많은 부분 이해가 됐다"면서 "쓰면서 생각하고 분석하니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대부분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시궁창 같은 삶'을 그녀가 결국 '보석'으로 건져낸 셈이다. 그녀는 첫 소설집을 묶다 보니 정작 자신이 가장 안타깝고 할 이야기도 많은 어머니 이야기가 생략돼 있는 것 같아 최근 마감한 문예지 단편에 어머니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그동안 어머니 사진도 제대로 보지 못하다가 이번 소설을 쓰면서 처음으로 마주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쓸 때는 그동안 많이 생각했던 거라서 이해나 화해의 방향을 설정했지만, 이번에는 우선 엄마가 죽었던 상황을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한 가지가 목표였어요. 그날 나는, 동생은, 아버지는 각각 어떻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소설에서 두 분이 사랑했다는 말을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수경의 첫 소설집에는 크리스마스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거니와, 성탄절이 주는 빛과 따스함과 화해의 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갈망으로 읽힌다. 말미에 수록된 필리핀 여행 이야기는 '온 마을이 빛으로 연결된 한 집 같았던' 풍경으로 끝을 맺는다. 현실은 고흐 자화상의 자줏빛 배경처럼 희미하고 서글프지만, 환한 빛에 대한 지향마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이수경은 "아직도 굴뚝을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마움을 전한다"면서 "'낙원구 행복동'의 난장이 가족은 이만큼 넓게, 멀리 왔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맺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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