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김연수 "시를 버리고 시를 살아낸 시인의 슬픔"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7-03 09: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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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생의 후반 '삼수갑산'에 유폐된 시인 백석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메운 시인의 내면
"때론 쓰지 않는 것도 훌륭한 문학 행위"

"쓰고 나서 저 자신도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괴로웠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소설에 대한 확신 같은 게 다시 생겼습니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소설가도 변해야 한다든지 그런 고민을 했지만, 아,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런 이야기를 저분께 들은 거 같습니다. 시대는 항상 변하고 광풍이 몰아치지만 자기 소신을 가지고 나아가면 되고, 정 어려우면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예전에는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걸 쓰고 나서는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소설을 쓰는 거보다 문학적 행위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상을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백석 시인의 후반기 삶을 소설로 형상화한 김연수. 그는 "백석이 시를 쓰지 않은 것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어떤 한 세계가 없어지는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김연수(50)가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는 백석의 후반기 삶을 모티브로 장편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을 펴냈다. 평안북도 정주 태생인 백석(본명 기행·1912~1996)은
고향이 있는 북쪽에 남았다가 재북시인으로 분류돼 남쪽에서도 1988년에야 해금된 시인이다. 그가 남긴 시들은 북방의 향토성과 향그러운 우리말과 모더니티까지 두루 수용해 남쪽 시단의 맨 윗자리에 놓인 인물이다. 분단 이후 그는 북쪽에서 시작 활동을 중단했고, 주로 번역과 아동문학에 종사했다. 아동문학마저도 1957년 논쟁에 휘말렸다가 '낡은 사상의 잔재'를 지닌 인물로 평가돼 삼수로 쫓겨가 양을 치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석은 1962년 삼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이 어리신 원수님'을 떠올리는 동시를 썼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김연수는 백석이 북쪽 당국에 의해 시 쓰기를 금지당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더 이상 쓰지 못할 기준을 정하고 그만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판단이 '삼수갑산'에서 생의 후반부 30여년을 시를 놓아버린 채 양치기를 하며 살다 간 백석의 시혼을 위무하는 이번 소설의 바탕이다.

 

소설은 조선작가동맹 초청으로 북에 간 소련 시인 벨라 이야기로 시작한다. 벨라는 북에 가서  기행의 통역으로 작가동맹 위원장 한병도와 함흥까지 돌아본다. 이 과정에서 기행이 북에서는 발표하지 않은 시들을 벨라에게 전해주고, 후일 그 행위는 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원인들 중 하나로 작동한다. 모스크바에 유학하던 북한 학생들이 스탈린 격하운동 분위기에 편승해 일인숭배를 비난하다가 망명하는 일화도 차용해, '옥심'이라는 여성의 비운을 전개한다. 이런 맥락을 통해 전후 북한 사회가 어떻게 일인 천하로 재편돼가는지, 그 과정에서 문인들은 어떤 처지에서 어떤 문학을 강요받았는지 김연수 특유의 잔잔하고 시적인 문체로 풀어간다.

 

기행은 북쪽에 남아 주로 소련문학을 번역하며 동시를 썼다. 그가 쓴 동시 '기린'을 두고 당에서 파견된 지도위원은 "우리나라에 있는 곰이나 범을 두고, 왜 머나먼 아프리카의 기린을 끌고 와 붉은 깃발을 다느냐"고 다그치면서 "아직도 순수문학의 잔재가 남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하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질타한다. 다른 시인이 쓴 '송아지'를 두고는 "송아지의 고독한 심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고독이냐"고 비판한다. 기행이 속을 털어놓는 친구 '준'에게 남이 들을 세라 술을 마시며 일본어로 토로하자 그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김연수는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면서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다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은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어린 자녀를 다섯이나 거느리고 있던 기행도 평양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조선문학가총동맹 위원장 한병도를 찾아가 구명을 청하지만 삼수로 파견되었고, 삼수에서도 '문학신문' 편집국장에게 편지를 쓰며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편지에 "양들에게 먹이도 주고 새끼도 받고 또 양떼를 몰고 높은 산상의 방목지로 오르는 일이 다 제가 하는 일"이라면서 "이런 일을 성실히 하여 나가는 가운데서 제가 기필코 당과 수령이 요구하는 로동 계급 사상으로 개조되여야 할 것을 마음 다지고 있다"고 썼다. 흰 당나귀와 나타샤와 낡은 항구의 처녀와 여승의 눈물방울을 담아내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 썼다고 믿기에는 안타까운 글이지만, 이런 다짐마저 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연수는 백석 자신이 이런 정황을 스스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쪽이다. 소설 속 친구 '준'의 말처럼 당에서 요구하는 대로 간단히 자기를 속일 수 있으면 평양에 남아 식솔들 건사하며 살아낼 수 있을 터인데, 끝내 '시바이'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백석은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까지는 지지하면서 끝까지 적응해보려고 했지만 노골적인 찬양시까지는 쓰지 못하는 기준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삼수에서 마지막에 한 편 쓰긴 했지만 거기까지가 마지노선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설에서는 지도위원이 "왜 쓰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기행은 재능이 모자라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김연수는 백석이 '시'의 최소한의 존엄을 끝까지 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쓰라는 대로 쓰면 되는데, 다들 그렇게 썼고, 그 사람은 그걸 못 쓴거죠. 실패해서 결국 삼수까지 간 건데, 사회구성원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자기 시를 지키려는 시인으로서는 실패가 아니라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죠. 불행을 선택할 사람은 없는데 그 사람 기준에선 불행이 아닐 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가 그렇게 실패를 했기 때문에 지금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된 거죠."

▲청년, 장년, 노년의 백석. 김연수의 소설에는 이태준, 한설야 등의 행로를 포함한 전후 북한 문단 상황도 펼쳐진다.  [문학동네 제공]


김연수는 대학시절 해금된 백석의 시를 처음 접한 뒤 1990년대 후반부터 소설로 써보려는 구상을 한 이래, 2016년부터 연작 형태로 단편을 발표하다가 네이버 오디오북 제의를 받고 장편으로 만들었다. 구상 시점부터 치면 20년 묵힌 역작인 셈인데, 그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시를 쓰던 사람이 북에서 어떻게 체제에 적응하는 시를 썼는지 한때 실망했다가 미루어두기도 했다. 그는 백석이 삼수로 쫓겨가던 나이가 돼서야 식솔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거운 책임을 공감하면서, 결국 체제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시의 존엄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그의 불행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1500미터 고지의 눈에 뒤덮인 백암에서 열차가 끊긴 상태에서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던 기행. 그는 죽어가는 병사가 전쟁의 끔찍한 환영 속에 내지르는 혼몽한 말을 듣는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이라는 말.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다, 는 말. 그리고 봄에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분명히 들었다, 는 말.' 백석은 이미 시인으로서는 죽은 사람이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봄'에 그의 노래가 세상에 널리 불려질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김연수가 시인의 감수성으로 묘사하는 아름다운 산문의 한 대목이거니와, 그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겨울밤' 옆에 누군가 적어놓은 메모를 인용하며 시의 불꽃을 말한다.

'시대의 눈보라 앞에 시는 그저 나약한 촛불에 지나지 않는다. 눈보라는 산문이며, 산문은 교시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말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산문이다. 준엄하고 매섭고 치밀하다. 하지만 시는 말하지 않는다. 시의 할일은 눈보라 속에서도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데까지다. 잠시나마 타오르는 사그라든 불꽃을 통해 시의 언어는 먼 미래의 독자에게 옮겨붙는다.'

 

소설에서도 불꽃은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모스크바 유학 중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가 자살한 '옥심'과 함께 평양 골목길에서 지켜보던 불타는 집, 삼수 심심산골에서 타오르던 마지막 장면의 산불이 그러하다. 철거 예정 판잣집을 태우는 불은 현실의 고난을 상징하지만, 저절로 생겨나 산을 태워 화전민들이 '천불'이라고 부르는 그 불은 미래로 불씨를 이어갈 '생명을 향한 어떤 뜨거움'이다. 기행이 양이 새끼 낳는 것을 도와주고, 어린 여자 아이의 시를 돌보는 장면들을 소설에 삽입한 것을 두고 김연수는 "이 장면들이 백석이 시 없이도 살아가게 만든 것 같아서 제가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 김연수는 자신이 직접 낭독한 네이버 오디오클립으로 먼저 선보인 이번 소설을 종이책으로 펴내면서 "두 장르 모두 상생하자는 차원에서 종이책 뒤에는 오디오클립에 없는 대목을 '보너스'처럼 붙였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나의 어머니와, 그분이 살아오신 한 시대에 이 소설을 드리고 싶다"고 마지막 작가의 말을 맺었다. 김연수는 "전후 철저하게 폐허가 된 상태에서 지금처럼 된 것은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살려는 힘이 있어서 완전 지옥 같은 데서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니까 어머니도 한 시대를 지나오며 대단한 일을 하셨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올 2월 1935년생 모친이 작고했는데, 그 슬픔은 시를 떠나보냄으로써 시를 살았던 시인의 불우에도 스며든 듯하다. 김연수가 묘사한 1963년 가을, 백석이 시를 태우던 삼수는 이러하다.

 

'강쇠바람이 독골 깊은 골짜기를 가을빛으로 물들이면, 남쪽으로 트인 하늘로는 진청의 허공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졌다. 그 하늘 아래로 아직은 초록인 무와 배추, 누렇게 영근 조와 귀리, 땅을 뚫고 올라온 불꽃처럼 군데군데 자리잡은 단풍이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호주머니를 털어 마지막 사치를 부리는 탕아처럼 떠나는 계절은 본래 색보다 더 많은 듯이 느껴지게 온 산하를 넘치도록 물들였다. 그러다가 끄무레한 하늘이 며칠 이어지면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바뀌었고 이내 성엣장이 실려오는 강물로 눈발이 죽 그어졌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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