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코로나19 시대,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조용호 / 기사승인 : 2020-08-31 17: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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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작가들이 기술하는 전쟁과 평화의 이면
베트남전 미군 사망자 넘어선 코로나19 죽음
"평화가 오고 나니 가면들이 모두 벗겨졌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전쟁 중이다. 적은 도처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나타나면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잠재적인 적이다. 다시 총소리가 난다. 내 휴대폰 긴급메시지 알림 사운드는 맥박 소리로 설정해놓았는데, 이 소리가 다급하게 들릴 때마다 가까운 어디에선가 코로나19를 품은 '적'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올라온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맥박 소리가 역설적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총소리가 되었다.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대표작가 바오 닌. 베트남전쟁에서 끝까지 기적처럼 살아남아 '전쟁의 슬픔'을 써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그는 평화가 찾아와도 이미 수많은 죽임과 죽음을 경험한 이들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전쟁은 정말 슬픈 것이다. 가정도 뿌리도 없이 끝없이 가련하게 떠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남자도 여자도 없고, 감정도 욕망도 없이, 오직 슬픔과 절망밖에 없는 세상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시체들의 산을 넘어 살아남아 '전쟁의 슬픔'을 집필한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Bảo Ninh, 1952~ )은 '전쟁은 슬픈 것'이라고 썼다. 그가 전쟁터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죽음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고 처절한 것이었다. 이 소설의 중심화자 '끼엔'의 상사는 파편에 맞아 터져 나오는 내장을 손으로 잡아 우겨넣으며 제발 자신을 살릴 생각은 말고 즉시 총으로 쏘아달라고 애원한다. 차마 죽어가는 이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어서 뭉그적거리자 고통을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던 그가 수류탄을 빼앗아 안전핀을 뽑아버린다. 이 신음과 고통과 죽음의 지옥도는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인간들의 추악한 난장판이었다.

 

많은 전투를 겪고 동료들은 거의 모두 죽었는데 기적처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끼엔은 작가 바오 닌의 분신이다. 끼엔이 시체의 산을 넘어 베트남전쟁의 마지막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목격한 인간의 죽음이란, 거의 무감각한 일상의 풍경에 가까운 것이었을 터이다. 전쟁이 끝난 뒤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유골을 발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끼엔은 "어쨌든 평화는 전쟁보다 좋은 거"라고 동료가 말하자 이렇게 답한다.

 

"평화……. 그래 평화가 오고 나니 우리가 썼던 가면들이 모두 벗겨졌지. 이제 비열하고 추한 본성들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이런 걸 위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어……. 전쟁에서 영광스런 승리를 거두었지만 우린 사실 패배했어.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절대 평범해질 수 없어. 우린 이제 정상적인 목소리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인간다운 목소리를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전쟁 중이라고 찰나의 평화와 사랑조차 없는 건 아니다. 호 안 타이(Ho Anh Thai, 1960~)의 단편소설 '남편의 파편'에 등장하는 어머니 틴은 미군기의 폭격을 피해 5살 연하의 군인 차우와 터널로 뛰어 들어갔다. 두 사람은 터널과 대지가 요동하는 동안 꼭 껴안고 있었고, 그들은 몇 번이나 이 일을 반복했다. 이 일로 어머니 틴은 혼전임신을 했고, 간부의 행동규약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고 하노이의 시댁으로 유배당했다. 틴의 남편은 전투기 조종사였고, 그는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 뒤 정찰비행에서 실종됐다. 남편이 미군 전투기 파편으로 만든 빗을 두 개 만들어 하나씩 보관하자면서 아내에게 선물했는데, 어머니 틴은 그 빗을 품고 아버지를 찾다가 끝내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한 채 죽었다. 어머니 죽음 이후에야 실종된 비행기를 인적이 드문 깊은 골짜기에서 발견했고, 그 빗도 찾아서 마침내 두 개의 빗이 제단에서 만난다.

 

전쟁은 이른바 평화가 찾아와도 길고 오래 그 후유증을 남기는, 인간이 발명해낸 최악의 산물이다. 인간이 인간을 의도적이고 일상적으로 죽이는, 그것도 한순간에 최대한 대량 살상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몰두하는, 그동안 엄청난 댓가를 치러오며 그 해악을 뼛속에 새긴 것이 전쟁이다. 지금 온 세계가 마주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지금까지 전쟁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미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 전사자 숫자를 훌쩍 뛰어넘었다. 베트남전뿐 아니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글로벌 패권 국가가 된 뒤에 치렀던 모든 전쟁에서 발생한 것보다 더 많은 인명손실을 치렀다.

▲바오 닌은 "평화가 오고나니 가면에 가려졌던 추악하고 비열한 본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적과 아군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던 물리적인 전쟁은 그나마 쉬운 싸움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선량해 보여도 그 인간이 바이러스란 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어서, 모든 인간이 두려운 대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이러한 새로운 전쟁 시기에 인류는 어떻게 다시 평화를 도모해야 할까.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무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부터 성찰해야 한다. 바다에서 죽은 물고기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자욱하게 검출되고, 화석연료로 극지방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끝없는 탐욕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데도 인류는 개인 혹은 자국의 안일만 탐하는 형국이다. 코로나19의 대공격은 인류에게 보내온 대자연의 수많은 경고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경고마저 무시한 채 인간의 탐욕이 끝 간 곳 모르게 증식된다면, 미래 전쟁터의 적은 누구도 아닌 바로 인간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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