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백두산절세위인들'에서 김정숙 뺐다

김당 / 기사승인 : 2021-04-27 14: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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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톺아보기] 18. 김정은 우상화의 '걸림돌' 제거 차원?
'조선의오늘' 영상사진문헌 고정면 '절세위인들'서 김정숙 삭제
'째포' 무용수 출신 생모의 출신성분은 '위대한 수반'의 걸림돌

북한 관영매체와 선전매체에서 이른바 '백두혈통 4인방'을 호칭했던 '백두산절세위인(世偉人)'에서 김일성의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1917~1949)을 제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북한 선전매체에서 '백두혈통 4인방'을 호칭했던 '백두산절세위인(絕世偉人)'에서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제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난해 9월에 캡처한 화면(왼쪽)에는 '김정숙'이 있지만 최근 태양절(4.15, 김일성 생일)을 맞이해선 '김정숙'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오늘 캡처]


북한 선전매체들이 최근 집권 10년째(9돌)를 맞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상사진문헌 특집'을 게재하는 등 본격적인 우상화 작업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칭송해온 김정숙을 백두혈통 4인방에서 슬며시 뺀 것이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조선의오늘'과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1일부터 각각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펼쳐주신 절세위인의 불멸의 업적'(40장)과 '절세의 위인을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어'(45장)라는 제목의 김정은의 영상사진문헌을 게재했다.

 

북한 선전매체가 '영생불멸의 존재'로 추앙하는 김일성∙김정일이 아닌 '김정은의 업적'으로 영상사진문헌 특집을 편집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북한은 그동안 5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가 되면 주요 국경일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현지지도 영상을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으로 칭송해왔다.

 

또한 북한 선전매체들은 이번에 '영상사진문헌특집'과 함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장으로서의 품격과 자질에 대하여 하신 교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교시(이상 '명제') △《전군이 진정한 전우가 되자!》 △《당의 령도는 인민군대의 생명이며 그 위력과 불패성의 근본담보이다》(이상 '명언해설') 등의 어록을 게재해 '김정은의 위대성'을 강조했다.

 

특히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 '우리민족끼리'는 '절세위인들을 높이 모신 주체조선의 크나큰 영광'이란 구호사진 아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상사진문헌을 '동급'으로 게재하는 등 변화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9년 전에 조선노동당 제1비서(2012. 4. 11)에 이어 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2012. 4. 13)으로 추대된 바 있다. 북한 선전매체들이 이를 기념해 별도의 특집면을 구성해 우상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 '조선의오늘'의 '현대조선을 빛내이신 절세위인들'이라는 영상사진문헌 고정특집면에서 김정숙 코너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선의오늘 캡처]


특히 '조선의오늘'은 지난해까지 '현대조선을 빛내이신 절세위인들'이라는 영상사진문헌 특집면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 동지 4인을 고정 배치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 '절세위인들'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 동지'를 삭제한 것이다.

 

북한의 관영∙선전매체들은 그동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김일성의 아내겸 항일투쟁 동지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까지 4인을 '백두혈통'을 상징하는 '백두산절세위인'으로 불러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선 아예 '백두산절세위인들과의 일화'란 고정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데 북한 매체들이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을 백두혈통을 상징하는 '절세위인들'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만 해도 우상화의 출발점은 '신비로운 탄생' 신화였다.

 

북한은 〈백두산전설집〉(1987년) 등에서 백두산에 별이 떠올랐는데, 이는 장차 조선을 구할 성인이 내렸다는 뜻이고 그 별이 바로 김일성장군 별이라는 내용으로 그의 탄생을 신격화했다. 또한 〈백두광명성절 전설집〉(1991년)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열여섯 신선'이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 귀틀집을 향해 큰절을 올렸고, 그들을 옹위하던 장수들이 주변나무에 "조선아 백두광명성 탄생을 알리노라"라고 글을 써 알렸다는 신화가 담겨있다.

 

이처럼 김정일의 '신비로운 탄생' 신화를 창작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모인 김정숙도 우상화해 김정숙을 '백두산 3대 장군'으로 우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광명성절 전설집〉의 '백학봉에 내린 어린장수'에서는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에게 솔방울로 폭탄이 되게 하는 도술을 가르쳐주고 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신격화하고 있다.

 

▲ 북한이 항일혁명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구호문헌들이라며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한 "조선의 3대 태양 김일성장군 만세, 태양의 해발(햇발) 김정숙 녀장수 만세, 태양빛 이을 백두광명성(김정일 지칭) 만만세"라고 쓰인 구호나무들. [노동신문 캡처]


1998년부터 '백두산 여장군'으로 불리던 김정숙은 2005년부터는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백두산 3대장군'으로 인민들에게 공표되었다. 김정은이 등장할 무렵인 2008년에는 '백두산 3대장군'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활동이 전개되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 매체들은 김정숙을 '백두산 3대장군'으로 소개해왔고, 김일성∙김정일과 더불어 우상화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2017년 8월 백두산 정상에서 열린 제5차 '백두산위인칭송국제축전'에서 '2017 백두산선언'이 낭독되었는데, 이 선언문에서 '김정숙'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김정은'이 대신했다. 노동신문에 실린 선언문을 보면 김정은이 김정숙 대신 '백두산 3대장군'에 등극한 것이다. 이 대회의 명예위원장은 '평양의 괴벨스'라고 불린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김정숙이 '백두산 3대장군'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다. 이는 '백두산 3대장군' 하면 김정숙을 바로 떠올리는 주민들에 대한 부담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선의오늘'은 최근까지도 '현대조선을 빛내이신 절세위인들'이란 고정코너에 김일성∙김정일∙김정숙∙김정은 4인을 배치해왔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론이 제기된다.

 

▲ 북한은 지난 2월 중순부터 김정은에 대한 호칭을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에서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위대한 수반이신 김정은동지'로 바꾸었다. [조선의오늘 캡처]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북한 관영매체들이 지난 2월 중순부터 김정은에 대한 호칭을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에서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위대한 수반이신 김정은동지'로 바꾸어 호칭한 것이다. 기존의 '최고령도자'에서 '위대한 수반'으로 바뀐 것이다.

 

김정은에 대한 호칭을 '최고령도자'에서 '위대한 수반'으로 바꾼 것은 집권 10년을 앞두고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다. 하지만 '백두혈통 4인방'을 지칭하는 기존의 '백두산절세위인'에서 굳이 김정숙을 제외한 것은 '뜻밖'이다.

 

그런데 김정은 우상화의 '걸림돌'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정은이 자신의 생모인 고용희를 우상화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아예 걸림돌인 할머니 김정숙마저 백두혈통 4인방에서 제외시켰다는 추론이다. 그렇다면 할머니 김정숙은 왜 김정은 우상화, 즉 '신비로운 탄생' 신화의 걸림돌이 된 것일까?

 

알다시피 김정일의 세번째 부인인 고용희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일본 오사카 태생인 고씨는 1962년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때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1971년 만수대예술단에 입단해 무용수로 활동했다. 이후 1975년 무렵 김정일의 비밀파티에 참석하기 시작해 1976년부터 김정일과 동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선전당국이 김정일 사망(2011. 12. 17)으로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집권 초기에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이란 기록영화를 제작해 고용희 우상화 작업을 시도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고용희의 모습과 육성이 당 간부들에게 처음 공개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김정은이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를 본격적으로 벌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북한 당국은 그 이후로도 김일성의 생모인 강반석과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에 대해 찬사와 우상화를 하면서도, 오히려 살아있는 권력인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와 관련된 언급은 이게 전부였다.

 

▲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어린 시절의 김정은과 생모 고용희의 모습. 김정은은 집권 초기에 고용희 우상화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사실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는 역효과를 낳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 캡처]


고용희 우상화 작업이 중단된 이유는 우상화가 오히려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김정은은 백두혈통이 아니라 후지산 줄기다"라는 소문이 나돈 것으로 전해진다. 생모의 우상화가 오히려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사실이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는 역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주민성분조사를 해 전 주민을 3대계층 51개 부류로 세분하는 계층구조 개편사업을 단행해왔다. 3대계층은 혁명의 동력인 핵심계층(30%)과 혁명의 대상인 적대계층(20%),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동요계층(50%)으로 구분된다. 51부류는 당조직지도부가 관리하는 비공개 분류에 따른 것이지만, 재일교포는 통상 '적대계층의 나쁜 성분'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북한에서 재일교포를 보는 시각은 부정적이다. 한국에서 일본사람을 '쪽발이'라 비하해 부르듯, 북한에서는 북송 재일교포를 '째포'라 비하해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희를 우상화하면 주민들이 생모의 출신성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생모가 '째포'임이 드러나면 백두혈통에도 손상이 가기 십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주민들이 백두혈통의 모계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백두산절세위인'에서 김정숙을 제외한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는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김정은이 김일성(태양절)-김정일(광명성절)과 달리 자신의 생일을 공개적으로 축하하지 않은 것과도 연관성이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각각 62세가 되던 1974년과 40세가 되던 1980년부터 자신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김정은은 1984년생으로 올해 37세이기에 자신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르면 집권 10주년을 맞는 2022년, 늦어도 40세가 되는 2024년에는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인 생모의 출신성분 때문에 그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 참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김정은 총비서 [조선중앙통신 캡처]


북한의 조선노동당출판사는 지난해 당창건 75돌(10.10)을 기념해 김정은 위원장의 전기인 '김정은동지 혁명역사' 도서를 전국 당 기관들과 교육기관, 공장기업소 도서실에 배포했다. 그런데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전기에 김정은의 혁명역사는 대학 시절(김일성군사대학)부터 시작되고 생년월일과 출생지가 없어 출생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교진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에 따르면, 앞서 출간된 〈김정은의 고사〉(2017. 11. 외문출판사)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혁명활동 교수참고서〉(2014년) 등에도 김정은 출생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김정은의 20살 때 행적을 수록한 2004년이 가장 빠른 시기이다.

 

다만, '교수참고서'에는 제1장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천품'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비범한 예지와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계시였다"라는 주제로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총을 쏜 것과 자동차를 운전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앞서의 '백두산 3대 장군' 우상화 방식 같은 '신비로운 탄생' 신화는 없다.

 

김정은은 강원도 원산의 초대소(김정일 특각 602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에게는 생모의 출신성분이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신비로운 탄생' 신화를 조작하기도, 생일잔치를 드러내 놓고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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