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실패한 '꿈'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9-03 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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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펴낸 손홍규
비극적으로 죽은 실패한 자들의 마지막 하루
그들이 꾸었던 꿈과 지켜내야 할 가치를 사유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열여덟 살 학생. 이 네 인물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무얼까. 19세기에서부터 격동의 근·현대에 이르는 과정의 사람과 사건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작가 손홍규(46)는 장편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문학사상)에서 그가 왜 이들을 선택했는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마지막 날을 붙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진중한 화법으로 한 땀 한 땀 소설을 지어가는 손홍규의 말을 들었다.

▲'실패했지만 성공한' 인물들을 근·현대사에서 불러내 우리가 간직하고 지켜야 할 '꿈'을 성찰한 소설가 손홍규. [손홍규 제공] 


-서로 다른 시공에 존재했던 이 네 인물을 씨줄로 묶은 배경은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실패한 존재들이다. 전봉준과 박헌영은 혁명에 실패했다. 노무현 역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추구했지만 지켜내는데 실패했고, 세월호는 말 그대로 생존에 실패한 참사였다. 하지만 모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 이후 근대 출현을 앞당겼다. 박헌영은 남북 모두에 전쟁 책임자로 지목되고 우리 역사에서 밀려난 인물이지만, 남북 모두에게 잊힌 존재이기에 남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무엇이 부족한지 반성해볼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노무현 역시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만큼이나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했고, 세월호도 생존에 실패한 참사이지만 진정으로 미래에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1895년 4월 24일, 동학농민군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은 현상금에 눈먼 옛 부하와 마을 주민들의 밀고로 체포돼 의금부로 압송된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생의 마지막 날 전봉준은 감옥에서 젊은이 '해원'과 더불어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그를 따라나서려는 자식들을 만류하며 죽창을 쥐고 집을 나서던 장면은 산문 서사시 같다.

 

'따라오지 말아라. 나서지 말아라. 아비의 그림자를 밟지 말아라. 붙잡지도 말고 울지도 말아라. 너희가 화로에 둘러앉아 짚으로 신을 삼을 때 삽짝에 발소리가 들리거든 내가 돌아온 줄 알아라. 긴긴밤 밝던 달이 이울고 별들이 하나둘 꺼질 때 먼동이 트며 바람이 갑자기 거세어질 때 어디선가 여우가 울면 아비가 고개를 넘어오고 있는 줄 알아라. 눈이 펑펑 내려 천지가 잠기고 사위가 빛으로 가득하여 개벽이라도 된 것처럼 눈부시거든 대숲에 가서 푸르고 가느다란 대나무 하나 베어다가 지붕에 꽂아 두어라.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모두 실패했고, 한편으로는 성공했다는 공통점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는가.

"이들이 꾸었던 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대체 이들은 무슨 꿈을 꾸었기에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이걸 다룰 수 있는 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꿈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꿈인지, 인간적인 꿈이란 게 과연 가능한지, 그런 걸 써보고 싶었다."

▲동학농민군을 이끈 전봉준(왼쪽)과 많은 곡절과 주변 사람들 희생을 딛고 공산주의를 꿈꾸었던 박헌영. [자료사진]

 

1956년 7월 19일, 해방 이후 북한 정권 부수상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박헌영(1900~1956)은 공화국을 전복시킬 음모를 꾸민 반역자이자 미제의 고정간첩이라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아 총살됐다. 박헌영도 또다른 젊은 '해원'을 앞에 두고 생을 돌아본다. 그가 해원에게 말한다.

 

'그 당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없었을 뿐 전봉준과 농민군은 모두 공산주의자였다네. 공산주의는 이념이 아니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야. 공산주의자는 영토를 점령하는 자가 아니라 압제와 억압과 수탈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에게 꿈이 되어 주는 자이네. 그 사람과 함께 꿈을 꾸는 자이네. 공산주의자의 유일한 임무는 꿈을 점령하는 것이네.'

 

-구체적으로 '꿈'은 어떤 의미인가.

"꿈은 우리를 인간이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든 간에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꾸는 꿈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자신의 대부분을 이 세상에 내어주면서 살고 있는 거 같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걸 내주고 이 시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역사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변혁과 혁명의 주체가 되지 않았나. 모든 걸 내준 것처럼 보이는 마음 한편에 아주 작은 거라도 저마다 내줄 수 없는 결코 포기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그런 게 한 조각쯤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꿈이 살아 있는 동안에 밖으로 나와서 실현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지막 한 조각 꿈을 포기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과 세월호 리본. [자료사진]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1946~2009)은 고향 마을 뒷산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은 깊은 상념에 잠겨 생의 마지막을 도모하는데, 세월호에서 죽은 열여덟 살 '해원'이 이승과 저승 사이 중음신이 되어 과거 시점의 노무현 주변을 맴돌며 안타깝게 말을 건다.

 

'누군가를 깊은 절망에 빠뜨려도 되는 정의란 없잖아요. 당신이 지금까지 바라 왔던 세상 역시 그런 세상은 아니었잖아요. 정의 같은 거 단번에 실현될 수도 없잖아요.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부당하게 얻지도 않겠어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학생 이름이 '해원'인데, 이 해원은 전봉준이나 박헌영 노무현에게도 같은 이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원한을 푼다'는 뜻을 지닌 '해원'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한 건가.

"해원이라는 인물은 죽음을 앞둔 실패한 인물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실패를 모르는 아직은 순결한 그런 존재로서 대비되는 의미가 있다. 이름 자체가 한을 푼다는 의미인데, 이 소설을 통해 한이 풀리거나 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럼에도 원한들을 풀기를 간절히 열망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대체 그 원한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다.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려서 원한조차 무엇인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꿈을 확인하면 그 원한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어떤 꿈이 좌절했는지 알게 되면 내가 품은 원한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그 원한을 풀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생겨나는 것 아닌가. 실패한 자들에게 자신이 무엇에 실패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 인물로 상정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 중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고등학생(교사 포함)은 262명이었다. 손홍규는 이 중 한 명, 열여덟 살 학생 이름을 '해원'이라고 명명하고 이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을 엄마 아빠의 시선으로 살갑게 전개한다. 

 

'너의 태명은 튼튼이였다. …간호사가 너를 따뜻한 물에 담갔다. 너는 아빠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아빠의 온몸에 전율이 흘러갔다. 아빠가 너의 태명을 불렀다. 너는 울음을 그치고 살짝 눈을 떴다. 너와 아빠의 첫 만남이었다. …너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울음마저 감미로웠다. …네가 태어나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생겨났다. 네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린 세계가 바야흐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전혀 몰랐다. 네가 만든 우주가 겨우 18년 만에 사라지게 되리라는 걸.'

-이들은 왜 '예언자'인가.

"미래를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살아온 과거 모든 것들을 알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적어도 죽는 순간은 누구나 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알게 되고 결국 예언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걸 순식간에 깨닫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의미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 사람들, 그럼으로써 후세에게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사람들, 이런 차원의 예언자를 보여주고 싶었다."

 

손홍규는 전봉준에게 말하게 한다. "꿈은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꿈은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정체를 드러내는 거였다. 눈이거나 마음이거나 상관없이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만 기적처럼 주어지는 거였다." 노무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해야 할 말을 남김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고, 세월호의 '해원'은 "아무도 펼쳐 볼 수 없는 책이 되어 세월이라는 서가에 꽂혔다"고 썼다. 그가 덧붙인 말.

 

'간절함이 귀중했기에 나는 이런 생각에 의지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이라고. 소설은 기억이다. 아름답고 비참했던 사람들이 어떤 세계를 꿈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형식이다. 잠이 들면 그들은 내게 예언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이 소설은 가까스로 기억해 낸 이야기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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