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지극한 사랑의 소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9-07 17: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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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펴낸 한강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4·3'의 비극을 '눈'으로 감싸며 전달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는 것이 생명의 길
"죽음과 삶, 인간의 어둠과 빛 사이로 내리는 눈"

"가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또 어떤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혹은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대답했어요. 모두 다 진심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모든 소설을 쓸 때 그 소설이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의 상태를 요구했습니다."

▲맨부커인터내셔널 상 수상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펴낸 소설가 한강. 그는 "1990년대 후반 제주에서 집필할 때 만났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꿈을 매개로 이번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맨부커인터내셔널 상을 수상(2016)하고 그 해 펴낸 장편 '흰'으로 다시 이 상의 최종후보(2018)에 올랐던 소설가 한강(51)이 5년 만에 새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선보였다. 7일 낮 온라인으로 기자들과 만난 한강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서 집필됐다고 강조했다. 

 

새 장편은 광주 학살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를 펴낸 이후 악몽에 시달리던 소설 속 작가 '경하'가 꾸는 꿈으로 시작된다. 키가 다른 검은 나무들이 앞으로 펼쳐져 있고 뒤로는 능선까지 심어진 이 나무들 사이로 밀물이 밀려오는데 봉분의 뼈들이 떠내려갈까 걱정하며 능선 쪽으로 뛰어가는 꿈. 이 꿈은 제주 출신 친구 '인선'과 더불어 퍼포먼스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인선이 나무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려 입원하면서 이야기는 제주 4·3의 비극으로 나아간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 중산간지대 인선의 집에 남겨진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나아가다 길을 잃고 눈 속을 헤맨다. 결국 새를 살리지 못한 채 경하는 서울 병원에 있는 인선의 환영과 내내 대화를 나눈다. 인선의 노모가 어떻게 4·3의 학살에서 오빠와 여동생을 잃고 그동안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다 죽었는지, 눈의 이미지 속에 시종 그날들의 비극이 시리게 전달되는 얼개다.

 

"모든 소설을 쓸 때 그 소설이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벗어날 때도 많지만 최대한 그 상태에 근접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소설이 요구한 것은 지극한 사랑의 상태였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환상성이 있는데,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나의 삶만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내가 여기 있지만 동시에 그곳에 있게 되는 것이고, 간절히 그러하기를 기구하는 그런 상태 자체가 초자연성을 지니는 것이죠.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이 그런 간절한 상태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이르기 위해 불가능하지만 애써 보았던 소설입니다."


한강은 '경하'가 새장에 갇혀 돌보는 이 없는 상태에 처한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제주 중산간 지대의 거친 눈보라 속을 헤매게 만들었다. 젖먹이들까지 무참하게 학살된 비극을 이야기하면서 작은 새 한 마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리 여리고 작아도 지금 살아 있는 생명은 어떤 명분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설에서) 새는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그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은 '눈' 3부작의 완결편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이 돼버려 다시 3부를 쓸 계획이라지만, 이 소설 역시 '눈'이 중요한 모티프로 내내 작동하고 있다. 인선의 모친은, 당시 열세 살이던 그녀는 학교 운동장에 학살당해 포개져 있는 시체더미에서 오빠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헤맸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로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이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인선의 모친은 제주, 그들의 말로 중얼거린다.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한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한강에게 '눈'은 무엇인가.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인간의 어둠과 빛 사이를 가득 채우면서 내리는, 그런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그 모든 것을 연결하면서, 그렇지만 무심하게 신의 공백 위로,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뚫려 있는 그 텅 빈 공간 위로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2018년 12월 마지막 주에 집필을 시작했다가 미뤄져 팬데믹이 본격화 됐을 때, 특히 후반부는 '코로나 상황'에서 써나가게 됐는데, 소설에서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인선의 이야기가 이런 환경에서 생겨났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고, 같이 있어도 마스크를 쓰고 포옹도 하지 못하는 시절인데 우리는 더더욱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 고독과 고립으로 인해 오히려 연결되고 있다고도 생각되고, 간절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단지 개인의 삶에 갇힌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닿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삶에만 갇히고 싶어 하지 않는 걸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 이 소설 쓰는데 조금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강은 '광주 학살'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는 "삶의 어떤 부분에 악몽이나 죽음이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서 "그 상태에서 이 소설과 함께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기보다는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한강은 "이제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쓰려는 방향은 다른 길이 될 것 같다"면서 "몇 개 이야기가 마음속에 맴돌고 있는데  결은 이 소설과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한강은 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되었고, 이번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제공]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이자, 영어권 노벨상으로 불리는 '맨부커' 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영역본 '채식주의자'로 수상하고, 이후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여러 작품이 번역되는 과정을 체험한 이후, 번역된 소설을 대할 글로벌 독자들을 의식하면서 한글 문장이 어떤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한강의 답변은 단호했다.

 

"사실 소설 쓸 때 이후 결과에 대해 많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정말 소설 쓸 때는 생각하기 어렵거든요. 그냥 그저 완성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저 이 장면이 써지고 다음 장면으로 건너가고 완성이 되고, 막연히 떠올랐던 그 상태에 이르렀는지 그것에만 골몰해도 제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실은 출간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이후의 번역까지는 생각을 기울일 틈이 없고, 그런 생각했다면 이렇게 제주 방언을 쓸 생각을 못했겠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썼습니다."

 

평론가 신형철이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뒤표지에 붙인 헌사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소설 자체에 집중하는 진정성이 새삼스럽다. 많은 이들이 썼던 '광주 학살'을 자신의 눈높이에서 의연히 접근하고,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라지만 다시 '제주 4.3'까지 보듬은 작가의 결기가 돋보인다. 봉합된 손가락의 환부가 썩지 않도록 바늘을 꽂아 피와 전류가 흐르게 하는 것처럼, "결국은 우리가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을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한강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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