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9-17 16: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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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공사 현장 배경 이혁진 장편소설 '관리자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인부의 죽음을
처리하는 현장 소장의 불의한 방식과 '관리'의 본질
"연약함을 받아들이되 나약해지지 않는 용기 절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지난해(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882명이다. 전년에 비해 27명이 증가했다. 한 해 동안 세월호 참사 사망자(미수습자 4명 포함 304명)의 3배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한 해에 그치지 않고 매년 되풀이 되는 비극인데도 세상은 무심하다. 근년 들어 젊은 목숨들이 근로 현장에서 숨지는 사례에 집중해 관심이 쏠리는가 싶었지만, 이마저 특정 비극이 돌출될 때만 반짝 집중되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 관리자의 속성을 소설로 녹여낸 이혁진. 그는 "사실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인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관리가 권력과 동일시 되는 현실"이라면서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게 관리자의 권력이고 그것이 좌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사망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텐데, 이들의 사망 원인은 구조적인 문제에다 개인적인 여러 정황들까지 겹쳐서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소설은 이런 통계 수치와 사회학적인 접근 너머 인간들의 부조리한 측면까지 아우르며 여러 겹을 설득력 있게 들여다보는 데 유용하다. 공사 현장의 죽음을 모티프로 관리자와 관리 당하는 인간들의 생태를 생생하게 드러낸 이혁진(41)의 장편 '관리자들'(민음사)이 반가운 이유다.

건설 중인 혁신도시에서 해안의 하수종말처리장까지 콘크리트 하수관을 놓는 공사 현장. '선길'은 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든 빠지려 들고, 걸핏하면 전화기를 들고 사라지는 초보 일꾼이다. 퇴근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매일 한두 시간씩 아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포크레인 기사 '현경'의 관찰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 선길은 20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회계팀장으로 퇴사했다. 아들 준서가 뇌종양에 걸려 수발하느라 걸핏하면 자리를 비워야 하는 통에 회사에서 나와야 했다. 마트 두 곳을 뛰며 하루 열여덟 시간씩 일하는 아내의 강요로 이곳 공사현장까지 왔지만, 자신마저 무너지면 대책이 없다는 강박감에 몸을 사리게 된 것이다.


공사를 총괄하는 현장 소장이 문제적 관리자다. 소장은 인부들이 함바집 메뉴가 부실하다고 항의하자 이게 다 멧돼지가 내려와 모두 망쳐놓았기 때문이라고 밥집 주인과 짬짜미를 한다. '한대리'에게 식재료 보관 비닐하우스를 걸레짝으로 만들게 해놓고 멧돼지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유 반장은 현장에서 겉도는 선길을 야간 멧돼지 불침번으로 추천하고, 오지 않는 멧돼지를 기다리며 선길은 혹독한 추위에 앙상해져간다. 선길을 그만 현장으로 돌려보내자고 조심스럽게 건의하는 한 대리를 향해 소장이 던지는 말.

'인마, 해 줄 거 다 해주고 챙겨 줄 거 다 챙겨 주는 게, 그게 관리야? 그게 시중드는 거지, 관리야? 해줄 거 다 해주고 챙겨줄 거 다 챙겨줘야 일하겠다는 놈은 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놈이야. 관리는 그런 놈들부터 제일 먼저 솎아 내는 게 관리고. 걔네들은 관리가 안 되니까!' 

 

공사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늙은 일꾼 '목 씨'의 말처럼 '납득할 수 없었고 이런 걸 납득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것이 어디에도 없는 소장의 멧돼지가 만든 현실'이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지. 밥 같잖은 밥이 나오더니 일 같잖은 일을 시키고 일 같잖은 일을 하게 되더니 이제 멧돼지 같잖은 멧돼지를 기다려야 돼. 근데 자식 아프고 딴 데 갈 수도 없는 선길이는 다른 도리가 없는 거야.' 

 

아들의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되자 휴가에서 돌아온 선길은 의욕이 충만해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으로 바뀐다. 공기 단축을 위해 인부들을 교묘하게 '갈라 세워' 하루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자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선길은 아랑곳없이 더 열심히 일하고 소장은 그를 칭찬하며 새 '팀장'으로 승진시키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추위와 고된 노동에 힘들어하던 인부들 중 말만 먼저 앞세우는 반장이 몰래 술판을 벌이지만, 선길은 그 판에도 끼지 않고 일을 하다 구덩이 아래로 떨어져 즉사했다. '소장은 수시로 현장에 들러 진도를 확인하고 작업 개선을 지시했다. 작업 개선은 정확히 말하면 날림공사였다. 국도변과 달리 보는 눈도 없으니 소장은 주저할 것이 없었다.' 소장이 생각하는 관리자의 '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개죽음 중의 개죽음이었다. 흙막이 공사를 하지 않아 사면이 그대로 빗물받이까지 이어져 있었고 안전수칙이나 시공 기준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선길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선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 선길이 어제가 아니면 오늘은,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내려올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멧돼지가 결국 내려온 셈이었다. 산이 아니라 소장의 머리에서 나온 그 횡액이 기어이 선길을 덮쳤다.' 현경을 포함한 목 씨 등 몇 명은 술판에 끼지 않고 선길과 함께 일을 하다가 그 사고를 겪었지만, 소장은 이들에게 돈을 내밀고 현실론을 설파하며 선길이 음주 상태로 일을 하다 죽은 것으로 몰아간다. 

 

'인간이란 그래서 싸우고, 그렇게 싸우기 때문에 싸울수록 더 편향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 불신을 극복하지도, 서로 이기거나 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진흙탕 밑바닥까지 서로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들을 끄집어 올려 줄 관리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싸움은 끝나야 하고 누군가는 개처럼 물불 못 가리게 된, 자신이 아니라 저것들을 따로 가둬야 하니까.'

▲ 기업체에서 일하다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이혁진은 "구조와 개인의 문제 양쪽을 두루 아우르는 게 소설가의 일"이라며 "어느 한쪽만을 내세우면 진영과 당파 논리에 휩싸이게 된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열심히 했는데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선길의 아내는 남편이 자던 방에 들어서며 흐느낀다. '냄새가 나요. 그 사람 냄새가 나요.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사람 냄새가…' 하루아침에 남편을 냄새로만 남게 만든 책임은 열악한 공사 현장으로 내몬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자는 오열하며 자책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평소 그리 좋아하지 않던 술까지 마시며 일했겠느냐고. 소장이 쥐어준 돈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논리 앞에서 인부들은 타협하지만, 현경은 소장의 현실 논리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답답해 하다가 평생 자책을 하며 살아가야 할 선길의 아내를 보고 결국 행동에 나선다. 살처분 대상 돼지로 인부들에게 술판을 벌이던 소장에게 포크레인을 몰고 가기 전, 자책하는 한 대리에게 현경이 던진 말.


'그러니까 뭐라도 해요! 참고 버티고 그딴 소리 하면서 징징대지 말고 선택하고, 책임져요!'

 

이혁진은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야말로 관리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배경으로 집필한 장편 '누운 배'로 한겨레문학상(2016)을 받으며 등단한 이혁진은 이번 소설도 등단작처럼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황석영이 공사판 노동자들을 담은 중편소설 '객지'(1971)를 발표해 한국 최초의 현대노동소설이라는 상찬을 받은 이래, 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노동자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설은 50년 뒤에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특히 이즈음은 1980년대 휩쓸었던 노동문학이 사라진 뒤 이른바 '사소설'의 시대를 거쳐 젠더와 페미니즘 화두가 지배하는 작단 풍경이어서 선 굵은 노동현장 이야기는 새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 속 중요한 화자인 포크레인 기사 현경은 여성이다.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현경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연약하지만 나약하지 않은' 마지막 선택이 오히려 여성성의 힘을 보여준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그 연약함을 나약함으로 인식하고 침묵하다 보면 지배받기 좋은 구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일할 때 여성 포크레인 기사들을 접하기도 했지만 소설 속 기사를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연약함을 인정하되 나약해지지 않는, 여성적인 강력함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전쟁이 나면 죽든가 살든가 하지만, 남자들이 죽고 나서도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여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을 나약함으로 폄하하지 않고 끈덕진 강렬함으로 살아나갔다는 박완서 선생 말이 생각납니다.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직시하면서 나아갈 때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이혁진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죽음의 진실을 호도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려는 욕망밖에 없는 사람이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혁진은 "50년 전 노동 조건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관리를 권력과 동일시하는 인간들의 속성"이라며 "구조와 개인의 문제, 어느 한쪽을 강조하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며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소설 뒤에 덧붙인 말.

 

'소설의 말미에서 현경이 개의 얇고 따스한 뱃가죽을 만질 때 떠올린 것은 연약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같이 얇고 따스하게, 희망이라는 단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그 연약함과 희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연약함은 나약함에 불과한 것인지, 희망은 욕망에 그쳐야 하는지, 인간에게는 나약함과 욕망뿐인지.'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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