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진영논리의 독재'를 타도하는 방법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9-30 15: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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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은 익명의 강성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지만 말고
강성 지지자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양지로 나와야
문재인 정권의 첫 경제부총리였던 김동연이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금기 깨기: 미래로 가는 길에는 금기가 없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으로 지낸 흙수저 출신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정책 제안이 돋보였다.

이 책엔 한국 사회의 주요 금기들이 각 분야에 걸쳐 언급되었지만, 내가 가장 주목한 건 '자기 진영 금기 깨기'였다. 이게 이루어져야 다른 금기들도 깰 수 있으므로 사실상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사업주는 사업주의 금기를, 노조는 노조의 금기를 깨야 한다. 진보는 진보의 금기를, 보수는 보수의 금기를 스스로 깰 때 개혁이 성공하고 사회발전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보수가 사회안전망의 대폭 확대에 찬성하고, 진보가 어느 정도의 안정성의 확보를 전제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것이다."

김동연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갈등을 빚는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정치 대타협'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기존 '대결의 정치'를 새로운 '타협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자기 진영 금기 깨기'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동연이 아주 좋은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자기 진영 금기 깨기'의 한가지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이 화두에 응답하고 싶다. 현 상황에서 기득권은 아무래도 정권을 잡은 집권여당의 몫이 클 것인 바, 민주당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걸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문 정권 출범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내내 목격하고 있는 문 정권의 대표적인 특성은 강성 지지자들이 정국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개혁에서부터 최근의 언론개혁에 이르기까지 문 정권은 내내 강성 지지자들에게 끌려 다녔다. 진영 논리를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진영논리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강성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 방법은 악플과 더불어 '문자폭탄 공격'이다. 이런 공격은 민주당 의원들이 움츠러드는 '위축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이게 '채찍'이라면 '당근'은 '응원 문자'와 더불어 후원금이다. 민주당 내에선 '응원 문자 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평소 점잖고 예의 바른 의원이 강성 지지자들이 좋아할 독설이나 욕설을 내뱉는다면 그건 '뽕 효과'로 보면 된다.

'위축 효과'와 '뽕 효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의 지난 5·2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선거에서 문자폭탄을 옹호한 분들이 1, 2, 4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의미를 읽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문자폭탄 옹호론자들은 그걸 일종의 소통 양식으로 이해한다. 맞다. 그것도 넓은 의미의 소통으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좋은 소통은 아니다. 소통의 생명은 쌍방향성이다. 문자폭탄을 받은 의원이 문자폭탄의 요구에 순응한다면, 이게 바로 쌍방향성이 아니냐고 우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쌍방향성은 그런 게 아니다. 이성과 논리로 차분하게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이 전제돼야 한다.

문자폭탄 발송자들은 권리당원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익명의 집단이다. 이 집단은 지도자 역할을 하는 논객이나 선동가의 영향을 받을망정 체계를 가진 조직은 아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느슨하게 주로 온라인을 통해 결속돼 있는 집단이다. 그런 방식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보장해주는 좋은 구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책임의 부재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집단은 감성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라는 건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다. 물론 감성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지만, 국가정책은 감성의 추동을 받더라도 이성의 견제와 지배라는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반론에 성실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얼굴을 마주 본 상황에서 토론을 벌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민주당은 익명의 강성 지지자들에게 더이상 끌려다니지만 말고,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낮은 자세로 "대표를 뽑아 대면 토론을 해봅시다"라고 간곡히 요청해야 한다. 대표를 뽑기 어렵다고 하면, 누구든 대면 토론에 나설 걸 요청한 후 토론 내용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하면 될 것이다. 얼굴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가면을 쓰면 될 것이고, 음성이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면 음성변조를 하면 될 일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자기 진영 금기 깨기'의 최대 장벽이 바로 강성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이기 때문이다. 강성 지지자들에게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집단이라는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을 하다 보면 무조건 강경파가 이기게 돼 있다. 강경 일변도로 치닫다 보면 모두가 다 '뽕' 맞은 상태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진영논리의 독재'를 타도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음지에서 어떤 식으로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양지로 나와야 한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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