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꼴통'은 왜 생겨나는 걸까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0-07 20: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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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담론을 구사하면서 실용주의 외치는건 어불성설
'편 가르기' 정당성 과신하는 사람일수록 '꼴통' 될 가능성 높아
"'실용주의'라는 용어는 긍정적으로는 정치에서 이데올로기나 도그마를 소멸시키기 위해 싸울 때, 부정적으로는 가치를 단지 기회주의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 관료와 중견 정치인들의 득세를 매도할 때, 관행적으로 사용된다."

<민주주의와 공론장>의 저자인 루크 구드의 말이다. 서양에서도 실용주의라는 용어의 용법이 늘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한국도 다를 게 없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편의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에서 실용주의의 장점과 매력을 결코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게다.

실용주의라는 용어를 부적절하게 쓰는 정치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명 비판은 다른 기회로 미루고, 여기선 한가지 원칙만 확인해두기로 하자. 끊임없이 '편 가르기' 담론을 구사하면서 실용주의를 외치는 건 말이 안된다. 실용주의는 '편 가르기'를 넘어서 민생에 유용한 실천적 결과를 중시하겠다는 것인데, 그 두가지가 어찌 양립할 수 있단 말인가.

2년전 타계한 전 국회의원 정두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지난 7월 그의 미공개 원고에 글을 보태 <정두언, 못다 이룬 꿈: 상식과 실용의 정치를 꿈꾸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두언이 2005년에 제시한 '실용주의 개혁'의 정의에 눈길이 갔다.

"실용주의 개혁은 첫째, 관념에 기초하지 않고 현실에 기초해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수요자, 즉 고객 중심이다. 둘째,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셋째, 아마추어리즘을 배격한다. 경험과 기술을 갖춘 프로페셔널들이 추진 주체가 된다. 시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모색하면 되는 것이지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

정두언이 방송에 출연해 했던 말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른바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의 실용주의 개혁 노선은 절대적 지지를 누려 마땅한 것이겠건만, 그게 그렇질 않으니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정두언이 2011년에 지적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게다.

"이 사회는 아직도 과거의 나 같은 싸움꾼들이 너무 많다. 이들을 보면 나이를 먹어도 생각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게 대단하고, 반면에 두 눈으로 보아도 알기 어려운 세상을 한 눈으로만 바라보고 산다는 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좌우 모두를 지칭해서 하는 말이다. 흔히 '수구우파, 꼴통우파'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구좌파, 꼴통좌파'도 많다."

꼴통은 국어사전의 정의로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여기선 "도무지 소통이 불가능한 고집불통"을 뜻하는 말로 이해하자. 좌우를 막론하고 꼴통은 왜 생겨나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편 가르기'의 정당성에 대해 과신을 하는 사람일수록 꼴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편 가르기'의 극단을 치닫는 경향이 있는 꼴통은 '편 가르기'의 기준에 충실한 것은 정당하거니와 아름답다고 믿는다. 그런 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게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60여년 전 미국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그런 꼴통들에게 각성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건강한 12세 소년 24명을 선발해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눈 뒤 두 팀 사이에 경쟁을 시키고 이를 관찰하는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 팀은 스스로 '방울뱀족'과 '독수리족'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였고, 경기할 때 서로 놀리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캠프를 습격해 약탈하고 깃발을 불태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는 사람들을 아주 사소하거나 무의미한 기준에 따라 집단으로 나눠도 각 집단에 속한 사람이 자기 집단에 대한 편애를 보이는 동시에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소속의 우연성이다. 자신이 서로 경쟁하면서 적대하는 두 집단 중 어느 한 곳에 속한 것은 우연이거나 큰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이걸 깨닫는 사람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이 비교적 뛰어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므로 꼴통이 될 수 없다.

꼴통이 많은 집단에선 꼴통 행세를 하는 게 유리하다. 순전히 그런 이해관계에 따라 의도적으로 꼴통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편 가르기'의 정당성에 대해 과신을 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속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기기만과 확신의 경계는 애매해진다.

정두언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을 편 가르기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이를 이용한 것이다"고 개탄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걸 특기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내세우는 건 말이 안될뿐더러 파렴치한 짓이다.

나는 정두언이 살아 있다면 나의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동의해줄 것이라 믿는다. "보통사람들에게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방울뱀족과 독수리족의 차이처럼 무작위적인 것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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