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노벨문학상 받은 '난민'의 글쓰기…지적 열정 가득한 식민주의 탐구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10-08 0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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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압둘라자크 구르나
21세부터 쓰기 시작, 식민주의와 난민의 운명 천착
장편 10권과 단편들…'파라다이스' 부커상 최종 후보
"동아프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시야 열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압둘라자크 구르나(73)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의 운명을 천착해온 탄자니아 출신 영국 소설가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2003년 존 쿳시(남아프리카공화국) 이후 18년 만이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압둘라자크 구르나. 한림원은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난민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에 집중해온 작가"라며 "식민주의 이후 시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라고 평했다. [영국문화원 제공]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1960년대 말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노예무역의 상흔이 깊은 잔지바르는 1963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후 혁명을 겪었고, 이후 아랍계 시민들에 대한 억압 속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면서 구르나는 그곳을 탈출했다. 그는 1984년에서야 잔지바르로 돌아가 임종 직전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구르나는 최근 은퇴할 때까지 영국 켄터베리 켄트대학에서 탈식민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면서 작품을 써왔다.

 

영국에 망명한 뒤 21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편의 장편과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난민들의 혼란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스와힐리어가 모국어임에도 불구하는 그의 문학 도구는 영어였다. 구르나는 세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왜곡된 삶을 다층적으로 제공해온 셈이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아프리카 작가 '은구기 와 티옹오'는 부족어인 스와힐리어로도 집필을 병행했지만, 실제로 이 언어로 독서를 하는 독자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현실이다. 

 

구르나의 첫 장편 '출발의 기억'(Memory of Departure,1987)은 아프리카 해안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 주인공의 여정을 그렸다. 재능 있는 젊은 주인공은 암울한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이로비의 부유한 삼촌을 찾아가지만 굴욕을 당하고 알코올 중독의 폭력적인 아버지와 매춘을 강요당하는 누이가 있는 몰락한 가족에게 돌아간다. 

 

연이어 내놓은 두 번째 장편 '순례자의 길'(Pilgrims Way,1988)에서 구르나는 탄자니아에서 온 이슬람 학생이 작은 영국 마을의  인종주의 문화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망명 생활의 다양한 층위를 탐색한다. 주인공 다우드는 영국의 인종차별 풍토에서 과거를 숨기려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비참한 성장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가 도망쳐야만 했던 탄자니아의 정치적 혼란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다우드가 캔터베리 성당을 방문하면서 과거 이곳을 방문했던 기독교 순례자들과 그가 영국으로 도망쳐온 여정의 유사점을 명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노벨문학상 홈페이지에 올라온 압둘라자크 구르나 캐리커처. 


세 번째 소설 '도티'(Dottie,1990)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50년대 영국의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흑인 여성의 초상이다. 이 여성은 어머니가 그녀의 가족사에 대해 침묵해온 탓에 뿌리를 모른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 영국에서도 뿌리를 느낄 수 없다. 그녀는 책과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과 정체성을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네 번째 소설 '파라다이스'(1994)는 구르나의 작가 인생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90년경 동아프리카 연구 여행에서 촉발된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세계와 믿음이 충돌하는 슬픈 사랑 이야기로 전개된다. 죄 없는 젊은 영웅 '유수프'가 어둠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난민의 경험을 다루면서 정체성에 주목하는 양상은 '찬양할 만한 침묵'(Admiring Silence,1996)과 '바닷가'(By the Sea,2011)에서 두드러진다. 이 두 1인칭 소설에서 '침묵'은 인종주의와 편견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난민들의 전략으로 제시되며, 또한 비참한 자기기만 속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찬양할만한 침묵'은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으로 이민을 간 한 청년이 결혼해 교사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소설의 화자는 고향인 잔지바르에서 자행되는 국가의 테러로부터 벗어나 영국에서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간다. 여자친구의 부모에게 그녀가 임신했다고 말하자 그들은 그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제 그들의 딸은 다시는 '평범한 영국 여성'으로 살 수 없는, '오염된' 존재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는 영국에서 만든 가족에게 비참한 과거를 감추면서 로맨틱한 조국의 이야기를 꾸몄지만, 그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 때 그가 만든 이야기는 산산조각이 난다. 잔지바르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는 망명 생활에 대해  침묵했다.

 

'바닷가'는 영국의 해변 마을에 살고 있는 노인 망명 신청자 살레 오마르의 내레이션이다. 오래된 망명 신청자인 살레 오마르와 수십 년 동안 영국에 체류한 대학 강사 라티프 마흐무드가 만나 서로 예상치 못한 인연을 폭로한다. 1부의 화자인 살레는 잔지바르 출신 늙은 이슬람교도로, 적의 이름으로 위조된 비자를 가지고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2부의 화자이자, 살레의 적의 아들인 라티프는 우연히 살레가 영국에 적응하는 것을 돕도록 위임받는다. 그들의 다툼 속에서 잔지바르의 억압된 과거가 살레의 내면에 떠오른다. 살레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을 라티프는 잊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파라다이스'(왼쪽)와 '마지막 선물' 표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전무하다. 


최근작인 '내세'(Afterlives,2020)는 구르나의 대표작 '파라다이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파라다이스'의 주인공 '유수프'를 연상시키는 청년 '함자'가 어린시절 독일 식민지 군대에 의해 부모를 잃고 몇년 동안 자국민과의 전쟁 끝에 마을로 돌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탄자니아는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 뒤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토착민의 관점을 강조하며 식민주의 시각을 전복시키는 이 장편은 "잊혀져야 할 모든 이들을 결집시키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는, 설득력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데르 올손 한림원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구르나의 진실에 대한 헌신과 단순화를 혐오하는 태도는 놀랍다"면서 "그의 소설들은 틀에 박힌 묘사로부터 벗어나 많은 세계 시민들에게 동아프리카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적 열정으로 가득한 구르나의 탐구는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스물한 살에 난민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열정은 최근작에서도 여전하다"고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배경을 밝혔다. 

국내에 번역된 구르나의 작품은 전무하다. 그를 아는 영문학자도 드물다. 일제강점기 일본을 거쳐 세계문학을 수혈받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시야를 넓히고 세계 문인들과 교류를 시도해왔지만, 아직도 상업성과 편향된 시각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한림원의 '깜짝 발표'를 탓하기 전에, 노벨문학상이 서구인들의 잔치라고 폄하하기 전에, 출판계와 학계의 고른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먼저 귀를 열고 볼 일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압둘라자크 구르나

 1948년 탄자니아 잔지바르 출생
 1968년 난민 신분으로 영국 망명
 1982년 영국 켄터베리 켄드대 영문학 박사
 1987년 첫 소설 '출발의 기억' 발표
 1988년 '순례자의 길' 출간
 1990년 '도티' 출간
 1994년 장편 '파라다이스' 부커상 최종 후보 선정
 2001년 '바닷가' 부커상 예비후보 선정
 2004년 켄트대 영문과 교수
 2005년 '탈주' 출간
 2020년 '내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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