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정치를 전쟁으로 만드는 '승자독식'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0-13 10: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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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열정'적 신념, 타인 '멸시'로 돌변
승자독식은 이성·소통·타협 죽이는 정치독약
"우리 국민은 매몰차다. 온갖 의혹에도 끝내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그때는 의혹도 문제 삼지 않을 기세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정치경영컨설팅 대표 이종훈이 어느 칼럼에서 한 말이다. 비리 또는 무능 의혹이 거세게 불거질수록 지지자들이 더욱 결집한 덕분에 결선투표 없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마지막 3차 선거인단투표에선 이낙연(62%)이 이재명(28%)을 압도적으로 눌러 이재명은 50.29%로 간신히 절반을 넘겼다지만, 이재명의 과반 승리는 '대장동 의혹 사건'이 지난 20여일간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아니 굳이 민주당 경선을 언급할 것도 없이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여론조사 수치가 모든 걸 말해준다.

정치적 악재(惡材)가 지지자 결집 효과를 불러와 결과적으로 호재(好材)가 된 사례는 그간 많이 있었지만, 이재명의 경우는 워낙 놀라워 이를 '이재명 현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그는 3년 전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라며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현상이 오직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벌어진 것 같진 않다. 무슨 일이건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한국인의 '열정' 기질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캐서린 문이 16년전에 발표한 "한국 민주주의의 열정과 과잉"이라는 제목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그저 어떤 교회 안으로 들어가 큰 목소리로 '아멘'을 외치는 기도자의 열정을 보라. 신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목회자를 보고 듣기란 어려울 것이다"며 "열정은 결코 홀로 거주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열정은 주로 무엇과 동거하는 걸까? "그것은 과잉과 짝을 이루어 함께 거주한다. 열정과 과잉은 한국사회에 무성하다. 그러나 정치적 과잉이 증대하게 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번영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열정적 신념은 타인의 신념과 의견에 대한 멸시로 돌변했고, 건전한 회의주의보다는 냉소주의가 한국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있다."

이 또한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견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열정'의 정체를 뜯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선 '무슨 일'이냐가 중요하다. 선거에선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온갖 화려한 명분과 수사가 난무하지만, 선거가 편가르기에 근거한 '진영 전쟁'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우리가 원하는 일'과 '그들이 원하는 일'이 다르며, '우리가 원하는 일'은 상당 부분 노골적인 '이익 투쟁'이라는 걸 의미한다. 아니 무슨 일을 하건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권력과 금력이 부여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거야 수천개의 고급 일자리에만 국한된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결코 그렇질 않다. 그 고급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겐 중앙 부처에서부터 지방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사와 예산 배분의 권력이 주어지며, 이는 수백만 명, 아니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미련할 정도로 과도한 '승자독식'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독재정권의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승자독식' 자체를 문제삼는 법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권을 비롯해 역대 정권들이 청와대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청와대 정부'를 밀어붙여 온갖 부작용을 낳았건만,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력이 가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오죽 많은가. 게다가 승자는 독식만 하는 게 아니라 패자에 대한 보복도 잘 한다. 그래서 대선은 열정의 수준을 넘어 목숨을 건 전쟁이 되고 만다.

문 정권의 이른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를 보라. 바로 이런 인사가 정치를 전쟁으로 만드는 주요 이유이건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별 영양가도 없는 비판만 간헐적으로 퍼부을 뿐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근본적인 개혁 방안에 대해선 말이 없다. 집권 후 '캠코국' 인사를 하겠다고 벼르기만 할 뿐, 내심 '승자독식'은 당연하다는 자세를 취한다. 심지어 중간지대 역할을 해야 할 시민단체·지식인에서부터 문화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영 패거리를 지어 '밥그릇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승자독식 정치가 나라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은 단지 망상일 뿐인가? 2019년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힌 '공명지조'(共命之鳥)'는 그게 망상이 아니라는 걸 시사해준다. 공명지조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러다간 모두 죽고 만다는 뜻이다. 승자독식은 정치의 독약이다. 이성과 소통과 타협을 죽이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서라도 승자독식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경쟁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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