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누가 '부동산 약탈'을 부추겼나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0-22 10: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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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폭등은 '합법적 약탈'이다. 내 집 마련해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 전세·월세값이 뛰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뺏어가는 약탈보다 더 나쁜 약탈이다. 폭력적 약탈을 저지른 악한은 그 정체가 분명하고 처벌받을 수 있지만, 합법적 약탈엔 지목할 수 있는 행위 주체마저 없어 '피해자 탓하기'라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약탈의 주범은 찾기 어려울망정 약탈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대통령일 게다. 하지만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할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탓인지 비판의 화살은 주로 부동산·주택 정책의 책임자들을 향하고 있다. 그런 책임자들 중 한 분이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수현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집에 갇힌 나라, 동아시아와 중국>이란 책에서 한국 집값 상승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주장해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나는 저격한다' 칼럼에서 서울 강북구 주민인 엘리가 김수현을 비판했고, 김수현은 반론을 하고 나섰다. 어떤 반론일지 궁금하다. 반론은 밑에서부터 읽는 게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수현은 반론의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고로, 저는 아래 (집값 추세) 그래프의 가장 낮은 점일 때인 2019년 3월 퇴임했습니다. 변명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그만큼 저로서는 안타깝게 이후 상황을 지켜봤고,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문제와 관련한 책을 준비 중이고,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난 다음에 발간하겠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사죄, 책임, 반성, 성찰. 어떤 이름을 붙이더라도 차기 정부 그리고 한국사회에 관해 얘기를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초기 2년을 몸 담았던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할 수도 있고, 혼선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니 김수현으로선 억울하게 생각할 점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반론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우선 저는 책을 발간하고서 인터뷰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접촉하지 않았고, 아마 어떤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국민이 화낼만한 지점을 뽑은 모양인데 원문은 내용이 좀 다릅니다. 앞뒤에 전제들이 있고, 표현도 정확히 그게 아닙니다. 엘리님도 책의 원문을 보지 않으신 게 확실합니다. 주소를 꼭 좀 부탁드립니다.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론 원문의 내용은 좀 다르지만, 언론이 '국민이 화낼만한 지점'만 발췌한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게다. 그는 그 책에 이렇게 썼다. "한국의 집값 상승률은 적어도 평균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낮은 편이다. 특히 OECD 국가 중에서는 일본과 함께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체감하는 집값 상승률은 국민들이 주로 어떤 집값과 비교하고 또 관심을 갖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얘기하기는 어렵다."(29-30쪽) 이런 주장은 48쪽에서도 반복되고 있고, 355-356쪽에서는 평등주의라는 문화 탓을 하기도 한다.

이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일부 문 정권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그간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OECD 통계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라는데, 이 통계를 믿을 수 있나? 지난해 7월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던 김현미는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4% 올랐다"고 주장했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52%라고 반박했다. 이런 식의 공방이 한두번 일어난 게 아니다. 정부 통계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고조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국가간 비교 통계는 전국 통계가 아닌가. 오히려 부동산 가격 하락을 걱정하는 지방 덕분에 물타기 된 통계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수현은 한국의 문제를 자꾸 동아시아의 문제로 보려는 것 같은데, 답답하다.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사는 '수도권 공화국'이 한국 말고 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책과 김수현이 10년 전에 출간한 <부동산은 끝났다>를 읽으면서 놀란 게 하나 있다. 두 책 모두 주택과 부동산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걸 '전문가의 저주' 또는 '분업의 저주'라 부르고 싶다.

수도권 집중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문 정권은 집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내 수도권 신도시·광역교통망 정책 등과 같은 수도권 집중의 가속화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수도권 부동산 정책의 분리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비극은 분리할 수 없는 이 두가지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분업 체제로 인해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즉, 부동산·주택 전문가들은 균형발전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정책을 세우는 일을 계속해 왔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부동산 약탈'을 부추긴 주범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문가 분업 체제'를 꼽으련다. 김수현의 다음 책에선 이 문제가 꼭 거론되기를 바란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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