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왜 이낙연은 혼자 소리 내어 울었을까?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1-02 2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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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前대통령 사면 발언', 靑사전교감 없었겠나
사면도, 이상돈 영입도 논란 커질 때마다 침묵한 문재인
나는 정치인들의 책, 특히 회고록을 즐겨 읽는다. 자기홍보용으로 쓴 책 아니냐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그렇진 않다. 정치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좋은 책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책들 중의 하나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낙연이 지난 5월에 출간한 <이낙연의 약속>을 들고 싶다.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너무 가난해 대학 재학 시절 영양실조로 고통받았다는 게 뜻밖이었다. 책 곳곳에서 '약속'을 지키는 걸 제1의 덕목으로 내세우면서 '인간의 품격'을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선 감동을 받기도 했다. 대담 형식으로 씌어진 이 책에서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건 144쪽에 등장하는 간단한 일문일답이었다. 

"최근 혼자 소리 내어 울었을 때는?"
"지난 1월, 오해와 비난을 받았을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랬던 걸까? 그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가진 올 새해 언론 인터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즉각 여권에서 거센 반발이 쏟아졌다. 특히 친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 대표는 사퇴하라", "이낙연 지지를 철회한다" 등과 같은 비난이 쇄도했다. 다음날 언론은 일제히 청와대의 반응에 주목하면서 '대통령과의 사전교감' 가능성을 제기했다.

"민주당 내에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을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교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경향신문) "이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들고나온 것은 청와대와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을 마친 것이란 관측도 있다."(조선일보) "순전히 이 대표 혼자의 결단으로는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중앙일보) "민주당 지도부에 속하는 한 의원은 '당에서 주도를 하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청와대와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내지르긴 힘든 사안'이라며 '이낙연 대표의 스타일을 볼 때도 사전에 교감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겨레)

그러나 청와대는 내내 침묵했다. 친문 지지자들의 비난이 더욱 거세지자 이낙연은 1월 3일 자신이 참여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사면 문제에 대해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며 국민과 당원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밝히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는 최고위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사면론을 꺼낸 데 대해 "코로나 위기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당면한 급선무다. 이를 해결하는 데 국민의 모아진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며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 그러한 저의 충정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친문 지지자들의 비난은 계속되었다. 경쟁자인 이재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득권 카르텔 개혁"을 외치는 등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으니, 이낙연에겐 큰 정치적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결정적 타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언론이 엉터리 관측을 내놓았던 걸까? 이낙연이 '대통령과의 사전교감' 없이 무턱대고 제기한 사면론이라면 혼자 소리 내어 울 일은 아니잖은가. '오해'라면 도대체 무슨 오해가 있었다는 것인지 그것도 궁금했다.

<이낙연의 약속>이 출간된 지 열흘 후에 출간된 전 의원이자 중앙대 명예교수인 이상돈의 <시대를 걷다: 이상돈 회고록>을 읽으면서 그런 의아심은 더욱 강해졌다. 2014년 9월에 일어난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장 사건' 때문이다. 당시 큰 위기 상황에 처해있던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 박영선은 이상돈을 만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상돈은 깜짝 놀랐지만, 다음날 박영선과 함께 문재인을 만났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 자리에서 문재인은 이상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상돈 영입 소식이 알려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54명은 즉각 그의 친여 경력을 문제삼아 반대 성명서를 냈다. 특히 친노 강경파 의원과 지지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됐으면 문재인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굳게 침묵했다. 문재인이 사전에 이상돈을 만났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더 이상의 내분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박영선은 아무 말 없이 이상돈 선임을 철회했다. 그리고 얼마후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은 김종인의 <영원한 권력은 없다: 대통령들의 지략가 김종인 회고록>에도 등장한다. 약속을 했어도 지지자들이 강하게 반대하면 철회하는 건 문재인의 워낙 착한 성품 탓일까? 물론 이 두 개의 사례에 근거해 이낙연의 '대통령과의 사전교감' 가능성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종인과 이상돈이 그랬듯이, 이낙연이 훗날 회고록에서 밝힐 이야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건 혼자 소리 내어 울었던 이낙연의 아픔과 억울함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뒤늦게나마 심심한 위로의 뜻을 보내고 싶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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