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난 아닌가"…'기득권 타파' 외치기 전 성찰하라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1-09 17: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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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자가 '기득권 타파' 외치는 기득권 내로남불의 모순
기득권 타파를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엄정한 자기 성찰

"기득권 세력을 확 쓸어버렸으면 좋겠어!" 어느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지인이 진심과 열정을 담아 한 말이다. 그 후보가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말이기에 웃으면 절대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힘들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써야 했으니 말이다. 그 지인의 재산이 상위 10%에 속하는 게 분명해 보여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재산이 많다고 해서 '기득권 타파'를 외치지 말란 법은 없다. '강남 좌파'라는 말도 있고 하니, 돈 많은 좌파가 '기득권 타파'를 외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기득권'이란 단어의 오·남용이 불편하게 여겨져 웃음이 터져나오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기득권이란 말을 원래의 뜻대로 쓰면 안되는 걸까?

기득권이란 문자 그대로 '이미 획득한 권리'란 뜻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엔 권력을 가진 쪽을 말한다. 진보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진보좌파가 기득권 세력이 되지만, '기득권 세력'이란 말에 묻은 때를 꺼리는 진보좌파는 여기에 시간과 구조의 개념을 더하려고 애쓴다. 오랜 세월 동안 구조로 자리 잡을 정도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이 진짜 기득권 세력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일리 있는 사용법이긴 하지만, 이는 '기득권 내로남불'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내가 가진 권력이나 금력은 개혁을 위한 것이지만, 네가 가진 권력이나 금력은 오직 너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이 성립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누적된 '장기 기득권' 체제를 깨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단기 기득권'도 감시와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겠건만, 그런 법은 없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

그러다 보니 기득권은 별 의미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저 싸울 때 상대를 비방하기 위해 동원하는 상투어 수준의 개념으로 전락한 것이다. 진보가 더 많이 쓰긴 하지만, '기득권 타파'는 더 이상 진보의 용어가 아니다. 리처드 닉슨이나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대통령들도 즐겨 썼던 말이다. 한국의 이명박도 201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기득권자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고, 박근혜도 2016년 1월 25일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정치권과 노동계의 일부 기득권 세력의 개혁 저항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진보에 비해 빈도는 덜할망정 보수도 쓰는 용어인데다, 그 누구건 자신의 개혁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아전인수(我田引水) 용법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득권 개념을 제대로 쓰려면 보통사람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 즉, 정치적 기득권보다는 경제적 기득권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개혁 프레임이다.

2011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슬로건처럼 "1% 대 99% 사회"를 문제삼을 것인가? 아니면 "20% 대 80%의 사회"를 문제삼을 것인가? 어떤 프레임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강남좌파는 '1 대 99의 사회' 프레임에 집착한다. 그래야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이 면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위 10%나 20%에 속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상위 1%만 탓하면서 기득권 문제를 정치적인 것에 국한시키려는 성향을 보인다.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엄정한 자기성찰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 홍성욱이 간명하게 잘 표현했듯이, "성찰은 내가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것이 내 주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로남불이 성찰의 최대의 적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찰을 하려면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주시해야 한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의 양보 없이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론 평등지향적 개혁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중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불신과 냉소 때문이다. 그들이 여야 정당들을 가리켜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성난 목소리로 '기득권 타파'를 외치지 말라. 그렇게 외치는 자신도 기득권자는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위 20% 사람들에게 양보를 요청하려면 정중한 호소가 필요하다. 그런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수의 힘이 결집될 때에 비로소 최상위 1%에 대한 개혁도 가능해진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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