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춥고 외로운 시대, 다시 소집된 노병의 종소리"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11-19 16: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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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해변에 엎드린 아이에게' 펴낸 장석 시인
지난해 등단 40년 만에 첫 시집 펴내고 새로 고인 시들
우리는 모두 '꽃과 별의 유가족', 거대한 생명 공동체
"나는 시에 매달린 어릿광대, 남은 깃발 있으면 주시오"
나는 가느다란 내 시에 매달린 어릿광대였다네// 시간은 거의 어디에나 입구와 출구가 있어/ 우리 생은 두 개의 문 사이에 놓인/ 길거나 짧은 다리// 어디에 가든지 늘 그 도시의 다리를 지나갔네/ 언제나 그 시간의 다리를 건너며 울었네/ 푸른 젊음이 정박했던/ 어둠과 붉은 노을의 고향/ 남은 깃발 있으면 주시오/ 노인의 얼굴로 이제 봄 길을 달리려 하네 ('오월은 마흔 번이 넘게 나를 깨웠네' 부분)

등단 40년 만에 지난해 시집 두 권을 한꺼번에 냈던 장석(64) 시인이 세 번째 시집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강)를 선보였다. 오랜 침묵 끝에 다 퍼올리고 난 뒤 새롭게 고인 시들을 길어 올렸으니, 이제 본격 항해에 나선 시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시집인 셈이다. 그는 다시 시작하는 시인의 길 위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삶에 늘 가래가 끓어' 비켜가고 외면했던 숱한 일들을 참회한다. '오월'은 마흔 번이나 그를 깨웠지만, 늦게나마 '노인의 얼굴로 이제 봄 길을 달리려' 하면서 '남은 깃발이 있으면 주시'라고 쓴다.

▲오랜 시간의 먼지를 털고 지난해 첫 시집을 냈던 장석 시인. 그가 새로 고인 시들을 담은 시집을 들고 본격 항해에 나섰다. [장석 제공] 

저 '오월'은 두말할 것도 없이 1980년 광주의 오월을 지칭하는 것인데, 장석은 그해 신춘문예(조선일보)에 '풍경의 꿈'으로 당선돼 눈길을 끌었다. 이 시 한 편만 남긴 채, 그 시에 대한 시단의 높은 평가가 전설처럼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끝내 그는 시를 발표하지 않았고, 40년 동안 통영에서 굴을 키우는 생업에만 종사했다. 80년대 벽두의 시대 분위기는 문학의 언어가 분노를 표출하고 싸우는 도구여야 했던 엄혹한 상황이었다. 그 절박함을 이해하면서도 그가 생각하는 시의 본령과 타협할 수 없어 물러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너는 분노가 없구나, 이런 말도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나름의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면서 "학업이나 삶에서뿐만 아니라 시 쓰기에서도 제 역량이 부족하고 나약하지 않았나 싶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침묵을 지켰던 세월 동안 자신이 시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름대로 홀로 시를 써왔고, 나중에는 발표도 하고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지만 너무 오랫동안 문학의 중심에서 떨어져 나와 어떻게 해야 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종을 울릴 때인데// 거리는 어둡고/ 종지기는 없다// 그 소리 없이는/ 새벽이 오지 않으니// 생각해보라/ 젊어 우리는 사랑의 타전병/ 늘 노래 부르던 나팔병// 마음속의 종을 울리고/ 더러는 가슴으로 북을 만들어 치자// 춥고 외로운 시대/ 우리는/ 이 겨울밤 다시 소집되었으니// 새벽을 향해 행군하는/ 노병들의 종소리를 보아라"('사랑의 타종')

이제 다시 시를 쓰는 지금, 그는 40년의 '시차'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새 현대시들, 특히 젊은 세대 시인들의 시를 접하다 보면 비유라는 것도 몇 겹으로 구사해서 굉장히 어렵다"면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감동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멋진 일인데 저는 시를 예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너무 풀어서 쓰는 고루한 사람인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도의 추상성으로 무장한 암호 같은 현대시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비판이자 자신의 길에 대한 점검이기도 한데, 문학의 방법론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생업의 터전으로 삼아 온 바다를 자주 끌어안는다. 

"나는 그 바다로 들어가는 강을 안다네/ 영원히 이어지는 귀가를/ 그 강으로 합류한 내를/ 그 내로 간 개울을/ 끝없이 계속되는 출가를/ 샘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리고/ 내게로 흘러 온 당신/ 당신에게 쏟아져 가는 나/ 처음 서로 섞이던 거리를/ 그 시간의 체온을/ 함께 흘러 지나갔던 다리/ 그곳의 물비린내를 나는 안다네// 떨어져 내리던 진달래꽃잎/ 성급했던 봄의 순례를/ 바람에 전 생애의 물비늘이 일 때/ 길의 막바지에 있는 신에게 참예하려고/ 느려진 가을 물살로 오던 마른 잎// 내 등과 당신 가슴팍에 내리던 모든 것/ 혹은 당신 등과 내 가슴 안의 모든 것/ 흐르지 않은 일들이 쌓이는 그곳의 어귀// 그리고/ 바다로 들어가는 그 강을/ 순록 떼보다 평화롭고/ 멸치 떼보다 붐비는/ 종말과 시작 의 유속을 나는 안다네"('순례의 해')



샘에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시작해 개울이 되고 내로 이어져 강으로 합류해 바다로 들어가는 강, 그렇게 '내게로 흘러온 당신'에게 '쏟아져가는 나'는 '처음 서로 섞이던 거리'와 '그 시간의 체온을' 기억한다. 모든 것이 소멸하고 순환하는 종말과 시작의 유속(流速)에 대해 시인은 말한다. 이 장엄한 생명의 터전이 훼손되는 상황은 문명의 업보와 암담한 미래까지 떠올리게 한다. 그가 사는 통영에서 자주 산책하는 해안가 한 구석은 조류 때문인지 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레기로 늘 가득하다고 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쓰레기가 넘치는, 작금의 문명을 닮은 아이러니 앞에서 그는 '흰 거품 속에서 영혼을 찾는 넝마주이'의 심정으로 쓴다.

길게 이어지는 해안은/ 자신보다 훨씬 더 긴 노래를 부르고 있네/ 수평선과 지평선 사이를 불어 가는 바람 소리// 바다 쪽으로는 부서지고 썩어 가는 잔해/ 육지 쪽으로는 어장 막과 마을과 도시/ 아직은 살아있는 폐허// 당신의 일부였던 나는/ 썰물을 따라 이제 돌아가네/ 나의 잔해인 당신은/ 해변에서 파도를 따라 출렁이거라// 모두들 온전한가/ 별의 잔해여 ('해변의 페허' 부분)

시인이 온전한지 안부를 묻는 '별의 잔해'는 모두 '유가족'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지구의 모든 생명은 빅뱅으로부터 파생된 우주의 잔해다. 모든 스러지는 것들 뒤에 남은 존재는 그러니 하나의 탯줄에서 나온 '유가족'인 셈이다.

"이 봄/ 나는 너와 함께 피어 있다// 내가 조금 먼저 왔고/ 저 꽃 먼저 가리라// 꽃들은 피고 지고/ 우리는 피고 지고// 나는 잠시 너의 묘비가 되고/ 너는 나를 잊지 않는 이였다가// 피고 지는 이 봄에// 우리는 늘/ 꽃과 별의 유가족"('꽃의 유가족')

경기고등학교 시절 시인과 같은 반 친구였고, 사회에서도 가까웠던 정치인 노회찬(1956~2018)을 떠올리면 이 시는 애틋한 추모시로 읽힌다. 그는 "유가족이라는 표현 대신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없어질 망亡이 아니라 생각할 망忘을 써서,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미망인이라고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즈음에는 금기어가 된,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부정적 의미의 '미망인'이 아니라, 미처 잊지 못하는 사람 '미망인'. 내가 '너의 묘비'가 되고 '너는 나를 잊지 않은 이'가 되었다가, 피고 지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꽃과 별의 유가족'으로 만나게 되는 바탕이, 잊지 않음, '미망(未忘)'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래 가까운 친구였던 작고한 정치인 노회찬(왼쪽)을 떠올리며 장석은 '꽃의 유가족'을 썼다. [강 출판사 제공] 



세월의 뒤는 모두 죽은 시간의 화석이고/ 앞은 살아있는 시간으로 꽉 차 있지는 않다// 낯선 관리들이 와 그 아이를 데려가기 전/ 파도와 썰물은 힘세어져/ 그의 얼굴을 바다를 향해 돌려주기를// 그래야만 그 아이는/ 이 일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 그 집의 마당이나 현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터이니//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걸음마 해서"('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부분)

6년 전 터키 해변에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이 에이란 쿠르디가 죽은 채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는 사진은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시인에게는 더 충격적인 장면이었고, 어떻게든 시를 써서 아이를 구원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써지지 않아 내내 고심하다가 이번 시집 원고를 넘기는 마지막 순간에 탈고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표제시에서 시인은 바다에게 아이의 구원을 청한다. '파도와 썰물은 힘세어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그는 "어차피 인류를 비롯해 지구의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비롯됐으니 잘못된 것을 정화하고 새롭게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다시 어머니 같은 바다에 기대어 빌어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평북 영변 출신 아버지와 전남 순천이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 통영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시인을 두고 평론가 정홍수는 '부산 영도 남항과 순천만을 하나의 선으로 이은 뒤 시간의 진행이 만드는 또 하나의 선을 따라 통영 바다라는 꼭지점을 가지는 삼각형의 구조'로 장석 시는 거듭 돌아온다고 썼다. 그 삼각형 속 심장 하나, 온통 자줏빛으로 흔들거린다.  

"저전동 옛 외가 안뜰// 저를/ 무화과나무에 매달아 주세요// 심한 장난을 했으니/ 자꾸 했으니/ 맨 꼭대기 가지에 거꾸로 매달아주세요// 팔월 햇볕에/ 다디단 아이가 될게요// 꼭대기 가지의 열매는/ 더 잘 익어요// 맛있는 사람이 될게요// 꼭지를 비트는 당신의 손 안에서/ 저는 온통 자줏빛으로// 잠시/ 이 세상의 심장이 되겠죠('순천 외가6')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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