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에 페인트칠 한다고 주민 삶이 달라지나"…800억 '도시재생'의 진실

김지원 / 기사승인 : 2021-11-24 16: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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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1호 종로구 창신동을 가다
헛돈 쓰는 도시재생사업에 실망한 주민들…"재개발하라"
오래되고 엉킨 전선·낡은 건물·비좁은 골목 등 낙후된 환경
40대 주민 "아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사가는 엄마 많아"
"몇백 억을 썼다는데, 주민 삶이 전혀 나아진 게 없어요. 창신동이 도시재생 1호라는데."

종로구 창신동은 서울시의 첫 '도시재생' 지역이다. 이곳의 도시경관 개선, 주택 리모델링, 공원 건설에 '혈세' 수백억 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주민들은 삶의 질 개선을 체감하지 못한다. 급기야 추가적인 마을 경관 개선사업에 반대하고 나섰다.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추진위원회는 지난 8일 종로구청 도시디자인과에 '창신8길 일대 마을경관 개선사업' 추진 중단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해당 사업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 골목이 비좁다. [김지원 기자] 


논란의 마을경관 개선사업은 2015년 시작한 창신·숭인 도시재생 사업의 연장선이다. 창신8길 일대에 화단 조성, 담 도색 등의 작업을 하겠다는 계획으로, 총 예상 사업비는 8억 원이다.

주민들은 왜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종로구 창신동 좁은 골목을 지나 주민들과 만났다. 


"벽에 벽화 그려놓고, 좁은 골목에 화환 만든다고 도로를 좁혀놓고 그게 도시재생이라는 거야, 지금."

1973년부터 창신동이 삶의 터전이었다는 이재홍(70대·남) 씨는 "구청장이 와서 900억을 썼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벽화를 그리고 가게 간판을 바꾼 정도다. 살기 좋게끔 바뀐 건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신초등학교를 졸업한 '토박이'라는 60대 여성 김 모 씨는 "오실 때 비좁은 골목을 보셨냐"고 물었다. 김 씨는 "저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독주택에서 불이 난다고 생각해보시라. 게다가 언덕은 너무 높아 겨울철에 늘 낙상 사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언덕을 조금 오르다보니 금방 숨이 찼다. 도로 옆 전봇대 위에는 낡은 전깃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재개발추진위 관계자는 "저기 전선에서 지난 7, 8월 불이 났다"고 말했다. 좁고 가파른 언덕 때문에 소방차 진입도 어렵다고 한다. 을지로 119 안전센터 관계자는 "창신동은 좁은 골목이 많아 진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언덕 위에는 주택이 밀집했다. 집과 집 사이는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의 모습. 엉켜있는 전깃줄이 복잡해보인다. [김지원 기자]

벽이 허물어져 가는 곳도 많았다. 군데군데 빈집도 보였다. 굳게 걸려있는 자물쇠와 낡은 창문, 창문에 빼곡한 거미줄이 '사람의 부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살던 이가 이사를 한 후,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 빈집으로 남겨졌다고 했다.
 
흑백사진처럼 모든 게 낡아보이는 빈 집과 허물어져 가는 벽엔 어울리지 않게 새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다. 초록, 노랑 페인트 한 줄. 추진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페인트칠했다. 이게 도시재생사업의 벽화사업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사용자가 많은 것 같지 않은 낡고 가파른 계단도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벽화 이런 건 좀 안 그렸으면 좋겠어. 벽화 한다고 뭔 도움이 되나." 김 씨의 푸념이 귓전에 맴돌았다.

▲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빈 주택 모습.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 페인트칠을 한 모습이 보인다. [김지원 기자] 

골목골목 설치한 '안전벤치'도 마을경관 개선사업의 하나. 평소에는 앉아서 쉬고, 눈이 오거나 불이 났을 때는 긴급 대응수단으로 활용하라는 취지다. 의자 뚜껑을 열면 소화기가 있단다. 그러나 뚜껑을 여니 낡고 녹이 슨 소화기가 있었다. 제대로 작동이나 할까. 설치만 했을 뿐,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듯했다.  

언덕 위 가파른 계단을 지나 낙산공원에 도착했다. 도시재생의 목적으로 27억 원을 들여 조성한 곳이라고 했다. 낙산공원에 대해 묻자 주민 이 모(50대·여) 씨는 "누가 올라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주민 편의 시설은 주민이 이용하기 편해야 하는데,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했다.

낡은 건물 대책으로, 도시재생계획에는 리모델링 지원사업도 있었다. 현재는 방식이 바뀌었지만, 리모델링으로 가격이 조금 상승하면 팔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민은 설명했다. 주변 환경이 나아지지 않으니, 팔고 나가버리는 식이었다고 한다. 

리모델링이 가능한 곳도 제한적이다. 주민 이 모 씨는 "리모델링 공사 자체를 거절당한 예도 있다"며 "동네 지인이 리모델링을 하려 했지만, 골목이 좁아 무거운 건축 자재를 가지고 올라갈 수 없다는 이유로 문의한 업자 모두에게 거절당했다"고 했다. 

이 씨는 "이 골목골목이 지렁이 골목이다. 그런 골목은 들어설 수가 없다. 리모델링도 평지만 가능하지, 언덕 쪽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니 점점 더 낙후되고 무너져간다"고 푸념했다. 

▲ 지난 21일 언덕 위에서 바라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택가. [김지원 기자]


창신·숭인동 도시재생 사업에는 총 868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마중물 사업비 200억 원, 공공시설 건립 및 상하수도 정비 등에 607억 원, 거리경관 개선사업에 61억 원이 쓰였다. 대부분 올해 연말로 사업이 끝나 관련 예산은 대부분 소진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생활환경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일자리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일자리 사업은 뭐야?"라고 다른 주민에게 묻는 주민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40대 '워킹맘' 하 모 씨는 "여기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많이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하 씨는 "저도 아이 학교 여건 상 이 동네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일하는 엄마라 직장 근처를 찾다보니 일단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하 씨 아들이 다니는 창신초등학교 1학년 학급은 3개다. 6학년 학급이 5개라는 점을 볼 때, 하 씨 말은 어느정도 사실인 셈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건 낙후된 생활환경의 획기적인 개선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은 재개발을 택했다. 최근 창신동은 '오세훈표 신속통합기획'을 신청,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도시재생지역이 신속통합기획 공모 사업지로 선정되려면 국토부와 서울시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므로 언제 시작될지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의 바람은 뚜렷했다. 

창신동 토박이 김 씨는 말했다.

"서울에서 제일 낙후된 데가 여기야. 재개발되어도 서너 번은 돼야 했는데, 도시재생이라는 거 자체를 주민은 잘 몰랐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기는 안 변해. 60년 이상 살았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어. 재개발로 이익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고, 내가 이 동네 창신초등학교 나왔고, 친정도 창신동이야. 이곳이 오랜 삶의 터전인 사람인데, 젊은 사람들이 자꾸 떠나".

U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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