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성찰을 모르는 사람이 꼰대다

안재성 / 기사승인 : 2021-11-24 21: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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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특징은 '듣기(listening) 기능' 마비…'젊은 꼰대'도 많아
나이의 많고 적음 관계없이 경청·성찰하는 자세 가져야
"꼰대의 집단적 특징은 듣기(listening)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지난해 10월 <한겨레>에 기고한 "꼰대"라는 짧은 칼럼에서 한 말이다. 그간 나온 수많은 꼰대론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김훈은 "(이웃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젊은 꼰대'들이 늙으면 나보다 더 꽉 막힌 꼰대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꼰대를 나이 중심으로 판별하는 것에 대한 이의 제기로 볼 수 있겠다. 

SBS 논설위원 윤춘호가 최근 출간한 <어떤 어른: 그 사람, 성찰하는 꼰대>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새삼 꼰대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론의 인터뷰 기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는 '그 사람'이라는 간판으로 인물의 심층 세계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인터뷰로 유명한 언론인이다. 그의 말마따나 "독한 글이 살아남는 시대"이지만, 그의 글은 독하지 않다. 따뜻하다. 그러면서도 어떤 인물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근접할 수 있게끔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인터뷰 대상자들은 모두 13명이다. 최백호, 오한숙희, 김성구, 김훈, 김미숙, 강우일, 박승, 윤정숙, 이왕준, 김판수, 강헌, 송해, 현택환. 세간에서 통하는 나이 중심의 꼰대 판별법에 따르자면 모두 다 꼰대에 속할 수 있는 연령대이지만, 책의 부제처럼 '성찰하는 꼰대'들이다. 윤춘호는 "열세 번의 만남을 통해 어른과 꼰대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성찰' 두 글자에 있을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소감 또는 결론도 비슷하다. 아니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꼰대'를 판별하는 핵심 기준은 '성찰'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찰은 '듣기(listening) 기능'이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미국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보그는 <설득력>이란 책에서 "'단순한 듣기(청취, hearing)'와 '귀 기울여 듣기(경청, listening)'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많은 혼란과 불화가 야기된다"고 했는데, 의미심장한 말이다.

보그는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단순히 듣는 행위는 청각기관이 귀를 통해 정보를 두뇌에 전달하는 '생리적' 과정인 반면 귀를 기울여 듣는 경청은 해석과 이해의 과정을 나타내며, 들은 말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심리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선 "내가 말했잖아!"와 "당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어?"라며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청취'와 '경청'이라는 두가지 듣기 방식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인 셈이다.

그런데 경청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별 재미도 없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많은 양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경청 후 성찰로 나아가는 데에도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소신과 신념을 높게 평가하는 문화적 장벽이다. "귀가 얇다"는 말은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느냐 어렵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내로남불의 문제도 심각하다. 내가 성찰을 거부하고 해오던 대로 밀고 나가는 건 소신이나 뚝심이지만, 상대편이 그렇게 하면 그건 고집이나 아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며, 그 사례로 "나의 의지는 굳다. 너는 고집이 세다. 그는 어리석을 정도로 완고하다"는 걸 들었다. 

권력과 권위가 강할수록 성찰의 가능성은 더더욱 멀어진다. 사람이 문제라기보다는 권력과 권위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에선 나이가 많을수록 권력과 권위가 강하다. 아니, 강했었다. 바로 여기서 비극이 벌어진다.

과거의 꼰대라는 말은 권력과 권위가 강한 연장자의 일방적 행위를 비난하거나 꼬집는 말이었다면, 오늘날 꼰대라는 말은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말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강고한 위계질서가 흔들리면서 권력과 권위가 예전처럼 강하지 않거나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시대착오적 언행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시라. 이런 문제가 단지 나이와 관련해서만 벌어지는 건가? 그렇지 않다. 경청과 성찰을 외면하는 건 나이를 초월한다. 우리는 지금 구질서가 깨지면서 '젊은 꼰대'들이 양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늙은 꼰대'가 더 초라하게 보일망정, 우리가 꼰대라는 말을 계속 쓰겠다면 이젠 나이를 따지지 말고 꼰대론을 펴야 하지 않겠는가. 윤춘호의 책에서 만난 '성찰하는 꼰대들'의 생각과 삶에 접하면서 해본 생각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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