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경마 엔터테인먼트'가 된 대선 여론조사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11-30 15: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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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폭증·예측불허 상황 속 '선거보도의 경마화' 초래
클릭 저널리즘 시대 여론조사, 엔터테인먼트 외 가치 없어
'경마 저널리즘(horcerace journalism)'이란 말이 있다. 언론이 선거를 마치 경마 중계 아나운서처럼 오로지 누가 앞서고 누가 뒤지느냐에만 집착하여 보도하는 관행을 뜻한다. 이젠 식상할 정도로 진부한 말이 되고 말았지만,'경마 저널리즘' 관행은 여전하다.

왜 바뀌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보도하는 게 기사의 흥미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나 제도, 정책의 문제는 재미가 크게 떨어진다. 독자의 관심과 흥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인 문제들을 인간적인 문제로 바꾸는 '의인화', 집단적인 문제들을 개인적인 문제로 바꾸는 '개인화'가 꼭 필요하다.

이는 비단 선거 보도 뿐만 아니라 대중 언론이 출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선거 보도의 경우엔 여론조사가 가세하면서 경마 중계처럼 흥미진진한 게임의 위상을 누리게 되었다. 게다가 자동응답시스템(ARS) 등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여론조사의 비용이 낮아지면서 여론조사는 폭증했고, 이는 '선거보도의 경마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일보>(11월 25일)에 따르면, 현재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은 모두 82곳으로, 이곳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론조사는 지난 대선 때 모두 594건이던 것이 이번에는 투표가 3개월 남은 시점에서 650건에 이르렀다. 하루에도 여러 건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가 들쑥날쑥 차이가 큰 것에 대해 말이 많지만, 순전히 엔터테인먼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예측 불허의 상황이 아닌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종희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잘 지적했듯이 말이다. "이번 대선은 비호감도가 높아 부동층, 미온적 지지층이 상당히 많다. 미온적 지지는 언제든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홍준표, 이낙연 후보의 표가 아직 완전히 재구획, 재편성되지 않았고 당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대선 여론조사의 홍수 사태는 엔터테인먼트로선 기여하는 바가 많지만, "이대론 안된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아니 여론조사 보도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마저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60년대 프랑스 정치에 여론조사가 도입되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여론조사가 ①모든 사람이 의견을 갖고 있다 ②모든 의견이 똑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 ③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에 관한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등의 그릇된 전제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여론조사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언론인들이 이미 단순한 데이터를 더욱 단순화시키는 위험을 처음부터 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물론 반세기 전에 나온 옛날 이야기일 뿐이지만, 여론조사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엔 도움이 된다. 오늘날엔 여론조사를 보도하더라도 시민들이 참여해 논의 과정을 거치는 '공론조사'도 병행해야 한다거나 여론 추세를 파악해 해설하는 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수준의 요청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요청마저 잘 받아들여질 것 같진 않다. 언론이 독자의 클릭 수에 사활을 거는 이른바 '클릭 저널리즘'의 시대에 엔터테인먼트 이외의 가치가 존중을 받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언론이 똑같이 외치듯이, 이번 대선은 "양강 후보 모두 초유의 '비호감 대선'"(경향신문)이 아닌가. '비호감 대선'에선 상대편 후보가 당선되면 절대 안된다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선거보도의 경마화'가 더욱 큰 관심을 끌 수도 있잖은가 말이다.

대선을 '욕하면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해도 괜찮으냐는 비판과 개탄은 계속될 것이다. "대선 후가 걱정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 모든 게 '승자독식의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향해서 나아가는 마지막 길목을 장식하는 거대 이벤트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거칠고 살벌한 '경마 엔터테인먼트'가 된 대선일망정 우리 모두의 역량을 믿고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차분하고 냉정한 정신 상태로 임할 수 있지 않을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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