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랑 협동농장 빚 탕감뿐인 김정은의 '혁명적 중대조치'

김당 / 기사승인 : 2022-01-02 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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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김정은 읽기] 5일간 최장 회의에도 '먹잘 것 없는 잔치'
8기4차 전원회의, 김일성 사회주의농촌테제∙빚 탕감 따라하기
김정은, 삼지연시를 본보기 도시로 '북한판 새마을운동' 시동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고민이 깊어졌다. 김정일 사망 후 백두혈통 지도자로서 인민에 선보였을 때만 해도 자신감과 패기가 넘쳤었다.

▲ 지난해 11월 삼지연건설사업 현지 시찰을 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 위원장은 2021년에 경제 분야와 관련된 현지 지도를 4회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정은은 김일성 사후 처음으로 육성으로 신년사를 해 주목을 끌었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훌쩍 뛰어넘는 면모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신년사를 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신년사를 대체했던 신년 편지도 쓰지 않았다. 그 스스로 역대 최장기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12. 27~31)에서 "(다음해는) 무겁고도 책임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이 승리의 해?…'기저효과'에 기반한 착시

그러면서도 전원회의에서는 한 목소리로 '승리의 한해'라고 자평했다. 2021년 초에 열린 8차 당대회에서 경제실패를 자인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평가다.

사실상 신년사를 대신한 '위대한 우리 국가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싸워 나가자' 제하의 노동신문 전원회의 보도문에서는 '승리'가 13회나 언급됐다. 당중앙위원회가 내린 총평이 '승리의 해'라는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역대 최장기간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12월 27~31일)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당대회가 제시한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실천강령을 높이 들고 긴장하고도 보람있게 투쟁해온 2021년은 엄혹한 난관속에서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 발전에로의 거창한 변화의 서막을 열어놓은 위대한 승리의 해이라는 것이 당중앙위원회가 내린 총평이다."

하지만 이는 실체적 성과와 실적에 기반한 승리가 아니라 '정신 승리'일 뿐이다. 8차 당대회가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고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대회가 열린 2021년을 조국 번영사에 특기할 자랑찬 승리의 해로 긍지높이 총화하고 국가부흥의 새로운 지침을 명시한 김정은 동지의 결론"일 뿐이다.

좋게 말해 '우리식'이지 북한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없는 비정상국가다. 집권 이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급제가 붕괴된 김정일 시기부터는 국가경제 통계지표 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경제지표가 추정치일 뿐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해온 인구주택총조사(인구 센서스)는 지난 2008년을 마지막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 자연재해와 식량난이 겹친 1995년부터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가 해온 북한 내 작황 조사도 2014년 이후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 김정은 위원장이 2021년 3월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다만 지난해가 5개년계획의 첫해인만큼 북한이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건설 등 일부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에 비해 2021년은 곡물 생산량도 30만t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산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을 469만t(2020년 440만t)으로 추정했다.

재작년에 견주어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소폭 증가한 것은 자연재해가 곡물 주생산지인 황해도와 평안남도를 피해간 데다 벼가 여무는 8월 일사량이 많았던 덕분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여전히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가다.

앞서 통계청은 최근 북한의 202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5%라는 추정치를 발표했다.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1997년 마이너스 6.5% 이후 최대 폭의 역성장 지표다. 2021년 경제상황은 2000년대에 들어 최대 폭의 역성장을 기록한 2020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인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2021년 '정신 승리'는 '기저효과'에 기반한 것이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아진 것이 아니고 통계지표 착시효과의 산물이다.

"김정은의 기념비적 보고는 김일성의 '농촌테제' 심화발전시킨 것"

김정은 총비서는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 제하의 보고를 했다.

김정은은 보고에서 사회주의농촌발전의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는 가운데 협동농장들의 경제적 토대를 보강해주기 위한 중요한 대책의 일환으로 협동농장들이 국가로부터 대부를 받고 상환하지 못한 자금을 모두 면제해주는 특혜조치를 선포했다.

앞서 노동신문은 전원회의 2일차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농업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도를 제시하며 '혁명적인 중대 조치'를 취해주셨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협동농장이 꼴랑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농기계 대금 빚을 탕감해주는 조치를 '혁명적 중대조치'로 치켜세웠던 것이다.

노동신문은 "새 세기 사회주의농촌문제 해결의 휘황한 전망과 설계도를 펼친" 이 보고문은 "우리나라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새시대를 알리는 위대한 투쟁강령"이자 "사회주의 낙원을 보란듯이 건설하려는 조선노동당의 강렬한 의지와 결심의 표출"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있다. 그렇다. 김일성 주석이 1964년 2월 노동당 제4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이하 농촌테제)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도 김정은 총비서의 보고문은 '농촌테제'를 심화발전시킨 것임을 숨기진 않았지만 딱 한번 언급했다.

"새로운 사회주의농촌건설강령은 위대한 사회주의농촌테제의 심화발전으로서 농촌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려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으로 된다."

북한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1946년에 착수해 1958년에 완수했다고 주장한다. 농업 부문의 경우 북한은 1954년부터 집단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1958년 8월에 전 농가를 협동조합에 가입시켜 농업집단화(협동농장화)를 완료했다.

▲ 1971년 5월 청산리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일. ['영광의 50년' 화보집 캡처]

이후 1960년대 들어 협동농장들의 경제지도 및 관리 개혁, 이른바 '청산리 방법'을 단행해 그 결과로 군 농업협동조합 경영위원회(1961)라는 군(郡)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 지도체제를 조직했다. 이는 농촌 부문의 북한식 자력갱생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북한의 농업은 공업보다, 농촌은 도시보다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김일성이 1964년 2월 노동당 제4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농업 개혁을 다시 단행하기 위해 발표한 것이 바로 '농촌테제'인 것이다.

김정일은 1964년 3월 김일성종합대학 졸업논문으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군(郡)의 위치와 역할'을 제출했다. 이는 지방 경제문화 발전의 종합적 단위,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군의 역할과 임무를 강조한 김일성의 '농촌테제'를 부연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아빠찬스'로 졸업논문을 제출한 셈이다.

'농촌테제'는 크게 △사회주의 하에서의 농촌문제 해결의 기본원칙 △사회주의 농촌건설의 기본 과업 △사회주의 농촌건설에서의 군의 역할과 임무 △협동농장들의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농민들의 생활을 높이기 위한 당면한 몇 가지 대책의 4개 부문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서 기본과업은 농업의 수리화,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의 농촌기술혁명과 농촌기술간부 육성, 사상교육 강화, 노농동맹 강화, 공업과 농업의 균형적 발전, 군 협동농장 경영위원회 기능 강화 등이다.

군(郡)의 역할을 높여 사회주의 농촌의 발전과 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전반적 발전을 촉진하는 문제에서는 군내 지방공업의 역할을 높이는 문제, 농촌문화혁명의 거점으로서의 군의 역할을 높이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협동농장의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농민의 생활을 높이기 위한 당면한 대책은 협동농장들과 농민들의 부담을 덜고 그들에게 더 큰 국가적 혜택을 주기 위한 일련의 대책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정은의 빚 탕감은 1964년 김일성의 협동농장 빚 탕감 따라하기

▲ 1976년 9월 황해도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 포전에서 벼 수확을 살펴보는 김일성 주석 [조선중앙통신 캡처]

이 일련의 대책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협동농장들이 국가에 진 채무를 탕감해주는 조치였다. 김정은 총비서의 이번 조치는 김일성이 58년 전에 실시했던 협동농장 빚 탕감 따라하기다. '할아버지 찬스'를 쓴 셈이다.

북한에서 수의사이자 축산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소장(굿파머스 연구소)에 따르면,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전(全) 인민적(국가) 소유와 협동적(협동농장단체) 소유의 두 가지 형태뿐인 북한에서 국가가 빚을 탕감해준 것은 1964년 김일성이 '농촌테제'를 발표할 때 말고는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조치가 '혁명적 중대조치'일 수 있겠다.

북한은 당시 국가가 농촌 기와집, 트랙터, 경작용 소, 비료, 농약 등을 지원해주면 협동농장은 가을에 농작물을 수매해 갚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김일성이 '농촌테제'를 발표하며 사회주의농촌은 잘사는 지역, 못사는 지역 없이 빚을 '0'으로 해서 동등선에서 출발한다는 취지로 빚을 탕감해줘 농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매주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북한 시장물가를 조사해오고 있는 조 소장에 따르면, 지금은 그때처럼 협동농장의 빚이 많진 않기 때문에 이번 빚 탕감은 협동농장과 농장원들의 가계경제에는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한 대에 몇만 달러짜리 협동농장의 75마력짜리 트랙터도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면 큰 빚이지만 농장원 전체로 배분하면 큰 빚은 아니다. 국가가 시장가격으로 환산해 채무를 지운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는 한 큰 빚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쌀 1kg에 국정 가격은 북한돈 46원인데 장마당 시장가격으로는 그 100배인 4600원이다. 국가가 빚을 탕감해 주는 것보다 사적 소유를 인정해주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동기 부여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도라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농촌테제'를 발표하면서 농업의 협동적 소유 형태를 전 인민적 소유 형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북한에서 협동적 소유는 모든 산업이 국가 소유가 되는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발생하는 불완전한 소유 형태다. 그러나 여전히 농경지의 약 90%는 협동농장에 속해 있어 협동적 소유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일성 따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조치를 취한 것도 있다. 바로 김정은이 "당이 중시하는 것은 나라의 알곡생산 구조를 바꾸고 벼와 밀농사를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라며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는 쪽으로 나라의 농업생산을 지향하는 방도를 밝힌 것이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는 쌀과 밀보리 농사를 많이 했는데 김일성이 "옥수수가 밭곡식의 왕"이라고 한 뒤로 밀보리 농사를 옥수수 위주로 바꿨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번 쌀농사와 밀농사를 강하게 추진하겠다고 주체농법의 전환 방침을 밝힌 셈이다.

전원회의 보도문 키워드 분석해보니…농촌(90)+농업(53)>당(137회)

▲ 200자 원고지로 100장 분량인 노동당 8기 4차 전원회의 보도문의 형태소 분석을 통해 보도문에 담긴 키워드를 추출해보니 '당'(137회)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농촌'(90회)이다. 오른쪽은 지난 2020년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피해복구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며 속옷차림 앉아 벼이삭을 살펴보는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캡처]

이번 전원회의 보도문은 1만5천자(공백 제외) 분량이다. 200자 원고지로 무려 100장 분량이다. 보도문의 형태소 분석을 통해 보도문에 담긴 키워드를 추출해보니 '당'(137회)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단어는 '농촌'(90회)이다.

'농촌'에 '농업'(53회)과 '농사'(12회), 그리고 '농장'(10회)까지 합치면 빈도수가 당을 훌쩍 뛰어넘는다. '농민'(애국농민, 영웅농민) 이란 용어도 사용했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농민'보다 '농업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보도문에도 '농업근로자'는 18회나 등장한다.

'농촌'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단어가 '건설'(65회)이다. '사회주의'(61회)보다 더 많다. 빈도수가 높은 키워드를 연결 지으면 전원회의의 핵심 메시지는 '사회주의이상(理想) 농촌 건설'이다. 이번 전원회의는 한 마디로 '농촌 발전을 위한 전원회의'인 셈이다.

김정은이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이상 농촌의 본보기(모델)로 삼은 곳은 지난 2019년 12월 읍에서 시로 승격한 삼지연시다. 북한은 양강도 삼지연을 '혁명의 성지'(김정일 출생지)로 선전한다.

"가까운 앞날에 전국의 모든 농촌마을을 삼지연시 농촌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리상촌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 당의 농촌건설정책이다."

▲ 북한이 '현대문명이 응축된 사회주의 산간문화도시'라고 선전하는 삼지연시 전경과 야경 ['금수강산' 화보집 캡처]

김정은의 사회주의이상촌 건설 목표는 '백두혈통'의 성지마을인 삼지연시를 모델로 한 제2, 제3의 삼지연시를 10개년 계획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위해 모든 시∙군들에 농촌건설에 필요한 시멘트를 우선적으로 전진 공급하고 필요한 건설장비를 갖추는 과업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또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있다. 그렇다. 70년대 박정희 시대에 농촌에 시멘트와 장비를 지원해 농가주택을 기와집이나 블록집으로 개량한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번 전원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잘 살아 보세, 우리 농촌도 한번 남조선처럼 잘 살아보세"로 요약된다. 김정은의 '새 농촌테제'는 '북한판 새마을운동'인 셈이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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